신희섭의 정치학-MZ 세대 ‘절약방’의 정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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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MZ 세대 ‘절약방’의 정치 메시지
  • 신희섭
  • 승인 2023.04.2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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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한 사람이 버블티를 마시고 싶다고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바로 돌아온 답은 ‘검은색 동그라미 스티커’를 내미는 것이다. 컵 옆에 붙이라는 거다. 다른 한 사람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셨다고 단체 카톡방에 ‘고해’성사를 했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엎드리세요”다.

요즘 ‘절약방’ 짤에서 본 것들이다. 절약방은 말 그대로 절약을 목표로 만들어진 단체카톡방이다. 다른 말로 ‘거지방’이라고 쓰기도 한다. 어려운 경제에 소득이 낮은 젊은 세대들을 중심인 카톡방이다. 이들은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서 아끼자고 서로를 부추긴다. 소비와 지출도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두고 논란도 있는 듯 하다. 실제로 빈곤층이 아닌데 빈곤층 코스프레를 하면서 실질적인 빈곤층을 조롱한다는 비판이 있다. 초기에 거지방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측면에서 두 가지는 의미가 있다. 첫째, 집단화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후대의 공화주의자들도 인간의 사회성 명제가 중요함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지만, 본질은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즉 모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이는 살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과 대화 없이 살기 힘든 존재가 인간이다. 그런 점에서 힘들어도 같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개인화되는 것을 걱정하는 세대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 더 의미있다.

둘째, 재미를 만들어내는 밈(meme, 재미있는 말이나 사진 등을 모방하거나 재가공하여 만드는 콘텐츠)으로 소비하고 있다. 경제적 고통이란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도 과거와 다르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서 아픔을 웃음 소재로 만든다. 웃음을 공유해서 ‘승화’한다.

그렇다. 승화한다. 고통스럽지만 한 번 웃고 참는다. 고통스러운 실체를 웃을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일시적으로는 참을 수 있게 된다.

절약방은 일종의 정신승리처럼 보이는 ‘심리화’ 작업이나 단체카톡방을 통한 ‘사회화’ 과정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이들 절약방은 두 가지 의미에서 정치적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첫 번째는 담론화다. 거지방에서 절약방으로 빠르게 명칭을 수정하는 노력처럼, 이들은 개인적 의제를 사회적 의제로 바꾸고 정치적 의제로 바꾼다. 거지방은 자기 비하나 혹은 계급적 의미로 악용될 수 있다. 반면 절약방은 상대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다. 아끼자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이 담론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긍정적인 담론화로 구성원들을 모으기도 좋지만 유지하기도 좋다. 그래서 다른 형태로 전환되거나 진화하기 좋을 것이다.

두 번째는 정치적 신호를 명확히 전달한다. “힘들다. 그러니 위로가 필요하다.” 이 신호가 정확히 송신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세대별로 시각 차이는 있을 것이다.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세상에서 뭐 힘들다는 것이냐!”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 이건 힘든 것도 아니다”와 같은 비판도 있을 것이다. 주관적인 고통과 힘듦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이 글 범위 밖이다. 다만 이런 신호를 보낸다. 그것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관건은 이것을 과연 우리 제도정치는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 주제가 개인들의 개별적인 투정만은 아니다.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다른 이슈도 많은데”라며 고개를 돌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절약방을 만든 이들에게 답을 줘야한다. 언제, 어떻게 하면 좀 덜 허리띠를 졸라매도 되는지 말이다. 요즘 한국 정치가 이 질문에 답을 찾고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이 질문의 출제자들처럼 재미있는 방식의 답을 찾을 수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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