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5-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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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5-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 손호영
  • 승인 2023.04.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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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예전에는 어떻게 해왔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국 한(漢)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조참은 재상 자리에 올랐음에도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시며 일을 하지 않고 기강을 세우지 않으니, 황제가 걱정하며 연유를 묻습니다. 조참은 자신의 선임이었던 명재상 소하와 그의 공로를 되새기며 답합니다. “소하가 이미 밝게 법령을 정하였으니, 직분을 지키며 옛 법도를 따르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조참은 ‘잘 된 선례를 따른다.’는 분명한 국정운영 철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소하가 만들고 조참이 따른다는, 소규조수(蕭規曹隨)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선례를 살피는 뜻은 완성된 결과물로서 선례 자체를 받든다기보다 선례가 만들어지기까지 그 지난했던 집적의 과정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

부동산을 누군가에게 매도하였음에도 등기는 다른 사람에게 넘긴 경우(이른바 ‘부동산 이중매매’ 사안), 그를 ‘배임’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1975년부터 이어진 법리입니다. 위 법리는 그 동안 ‘배임’의 본질과 관련하여 무수한 비판이 있었음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40년이 넘게 지난 2018년에도 위 법리를 유지하기로 새삼 결정하면서, “이러한 판례 법리는 부동산 이중매매를 억제하고 매수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왔고, 현재 우리의 부동산 매매거래 현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여전히 타당하다...기존의 판례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한 것도 선례를 존중하는 맥락입니다(대법원 2017도4027 판결).

법적으로 선례에 구속되지 않는 판사는, 역설적으로 선례를 살피고 선례의 역사성과 무게감을 명시적으로 밝히기도 합니다. “대법원 판례를 받아들이는 법적 현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국민에게 법전 속의 법은 멀고 살아있는 사건 속의 판례는 가깝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대법원 판례의 역할은 개별 사건 하나에 대한 해결에만 그치지 않고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제도적 기능도 가진다. 국민은 대법원 판례에서 의사결정과 행위의 지침 및 적법·위법의 경계를 찾는다...판례의 선언 못지않게 판례의 변경 역시 신중하고 절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에 존재의 뿌리를 둔 판례의 무게이다...판례도 하나의 역사이다(대법원 2017도19025 판결 중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통시적으로는 선례를 살핀다면, 공시적으로는 외국 사례를 검토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비빔국수를 파악하기 위해서 파스타와 무엇이 같고 다른지 확인하는 식입니다. 경계를 확인함으로써, 파악하고자 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선명한 인식은 경계선에서 나온다.”

법철학자 라드브루흐(G. Radbruch)가 “과거에 철학이 하던 일을 현대는 ‘비교’가 한다.”고 하거나, 영국법학자 로손(F. G. Lawson)이 “프랑스 법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야 좀 더 나은 영국 법률가가 될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나라 사회학계에서, 비계량 연구방법으로 국내와 외국의 사례연구와 비교사례연구는 가장 많은 40.4%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외국 사례를 참조할 때는, 다음 사항을 숙지해야 할 것입니다. ① 비교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을 비교해야 합니다. 비교할 수 없는 것끼리 비교하면 비교하지 아니함만 못합니다. ② 같은 제도와 개념이라도 다른 문화권에서는 다른 기능과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③ 단지 내용이 아니라 배경과 현실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④‘언어’가 중요하므로 번역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등의 원칙을 지켜야 바른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 사례와 유사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분명 지금 판단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법조인이 선례와 비교법 사례를 탐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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