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시즌2 (2)-감시 대신 ‘후원과 책임 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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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시즌2 (2)-감시 대신 ‘후원과 책임 서클’
  • 임수희
  • 승인 2023.04.1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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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임수희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출소하기 수개월 전부터 “못 나오게 해야 한다!”고 공분과 우려를 들끓게 했던 조두순씨는 출소 후에도 이사를 갈 때마다 “못 오게 해야 한다!”는 지역 주민들의 혼란과 반발을 몰고 다녔습니다. 사람을 때려 죽게 하거나 강간을 하고 심지어 어린아이에 대해 심각한 강간상해를 입히기도 한 전과 18범.

그의 거주지 주변 가로등은 밝은 LED로 바뀌고 길에 100개의 태양광 조명과 60개의 방범 CCTV가 설치되어 24시간 모니터링을 한다는데, 그것도 모자라 2개의 순찰초소를 두고 경찰 9명이 3개조로 24시간 순찰을 하고 거주지와 학교 주변은 주·야간 별도로 순찰대가 돌아간다고 합니다(2022. 11. 22.자 중앙일보). 이러한 감시 예산이 한 해에 3억~4억 원 수준이나 된다고 하고요(2023. 1. 20.자 조선일보). 12년 징역형을 살았는데도 출소 전 재범위험성 평가에서 ‘높음’ 판단이 내려진 조두순씨와 같은 고위험성 성범죄자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돈을 쏟아붓고 행정력과 온갖 인력을 총동원하는 것 외에 범죄예방과 사회안전을 도모할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요.

1990년대 초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작은 도시 해밀턴에서도 조두순씨 같은 아동성범죄 등 전과 20범의 찰스 테일러라는 고위험 성범죄자가 있어서 출소를 앞두고 시민들의 불안과 출소 반대 여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도소 교정위원인 한 목사가 시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5명의 멘토 서클을 이루어 교도소 안에서 테일러를 멘티로 일 대 다수 멘토링을 시작했고, 출소 후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주 1회씩 만남이 수년간 꾸준히 지속되었고, 테일러는 출소 후 10여 년 동안 아무런 재범 없이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시민들이 테일러에게 친구처럼 무조건적 관심과 정서적 지지를 해 준 멘토링 모임인 ‘후원과 책임 서클(Circles of Support and Accountability)’은 줄여서 ’코사(CoSA)’라고도 하는데요. 이후 캐나다와 미국 전역, 그리고 유럽, 호주, 뉴질랜드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조건 없는 관심과 지지로 멘티의 마음을 열고 그러한 마음 상태에서 비로소 멘티로 하여금 자신이 범죄행위로 피해자에게 입힌 상처와 고통을 제대로 인식하고 공감하며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이지요.

‘후원’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금전적 지원에 대해 사용하기 때문에, 저는 멘토링 서클이 수감자 멘티를 순수하게 지지 또는 지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지지와 책임 서클’로 번역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의 ‘지지’는 중범죄자의 잘못된 행동과 범죄를 지지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 그러한 자라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타인의 피해와 고통을 인지하고 자신의 행동을 책임 있게 하는 선량한 시민이 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을 것이라는 신뢰로, 그러한 내면의 힘을 발굴하여 끌어내고 공동체의 힘으로 계속 ‘지탱’해 주어서 유지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받쳐 준다는 의미입니다. 즉 수감자와 출소자의 선량한 행동과 책임을 지지하는 것이지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2014년부터 ‘코사 코리아’가 설립(설립자: 김영식, 박정란)되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소년원에서 소년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시작해서 2016년 이후 서울남부교도소의 중범죄자와 출소예정자를 위한 멘토링을 해 왔으며, 현재는 보호관찰 대상자들에 대해서도 ‘서클 멘토링’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는데요. 나아가 놀랍게도 주로 전자발찌를 찬 고위험성 출소자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멘토링을 실시해 오고 있다 합니다.

사실 가해자에 대해 복수나 엄벌을 원하는 여론이 팽배한 우리나라에서는 ‘뭐 하러 조두순 같은 자에게 잘해 줘?’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조두순씨 같은 고위험군 출소자에 대해서까지도 ‘지지와 책임 서클’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여건을 갖출 수 있다면, 앞서 언급한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아낄 수 있으니, 고위험군 출소자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데에 소진되어 버리는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를 고려해 볼 때, 이와 같은 교정 단계 회복사법적 시도는 단지 가해자를 위한 낭만적 생각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사회를 위한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으로서 고려될 필요도 있겠습니다.

일본의 한 교도소를 5년 넘게 촬영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사카가미 가오리는 존중과 공감의 대화 서클이 교도소 수감자들을 변화시켜 간 과정을 관찰한 기록을 『프리즌 서클』이라는 책으로 펴내면서 “폭력의 연쇄가 아닌 호응의 연쇄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기를” 희망했습니다. 폭력이 인간의 한 속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장과 변화 역시 인간의 한 속성이며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를 지탱하면서 함께 폭력을 극복하고 안전하게 공존하고자 하는 것 역시 인간의 한 속성임을 기억한다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이 사회와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범죄자들에 대한 회복적 시도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임수희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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