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24)-친생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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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24)-친생추정
  • 신종범
  • 승인 2023.03.3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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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최근에 드라마 ‘더글로리’를 보았다. 워낙 인기가 있던 드라마여서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긴 시리즈물이라 보지 못하다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내정되었던 정순신씨의 아들 학교폭력 문제와 함께 그 내용이 회자되면서 결국 정주행에 나서고 말았다. 드라마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성인이 되어 가해자들에 대해 복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탄탄한 줄거리와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배우들의 현실감 있는 연기력으로 몰입감을 주었다.

극중 주인공이 복수를 해가는 과정에서 여러 법적인 이야깃거리가 있는데, 그중 친자 관계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극중 주인공(문동은)에게 학교폭력을 주도한 가해자(박연진)의 딸(하예솔)이 박연진의 배우자(하도영)의 친딸이 아니라 또 다른 가해자인 전재준의 친딸이라는 사실이 유전자검사에 의해 밝혀진다. 전재준은 친구인 변호사에게 하예솔과의 친자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지만, 변호사는 하도영이 하예솔을 버리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유전자검사에서 친딸임이 99.99...%로 나왔는데도 말이다.

이는 우리 민법이 친생추정(제844조)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친생추정은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강한 추정이므로, 처가 혼인 중에 포태한 이상 그 부부의 한쪽이 장기간에 걸쳐 해외에 나가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으로 부부가 별거하고 있는 경우 등 동거의 결여로 처가 부(夫)의 자를 포태할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그 추정이 미치지 않을 뿐이고, 이러한 예외적인 사유가 없는 한 누구라도 그 자가 부(夫)의 친생자가 아님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와 같은 추정을 번복하기 위하여는 부(夫)가 민법 제846조, 제847조에서 규정하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 그 확정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극중에서 하예솔은 박연진과 하도영의 혼인 중에 임신하여 출생한 자녀로 민법 제844조에 의하여 하도영의 자녀로 추정되고, 박연진이 하도영의 자녀를 포태할 수 없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친생부인의 소에 의하여만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다. 한편, 우리 민법상 친생부인의 소는 부(夫) 또는 처(妻)가 다른 일방 또는 자(子)를 상대로 하여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내에 이를 제기하여야 하므로(제847조), 박연진 또는 하도영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않는한, 전재준은 친딸인 하예솔의 부(父)가 될 수 없다.

유전자검사 결과에 의하면 과학적으로 하예솔은 전재준의 친딸임이 명백함에도 법적으로 그 스스로 친자관계를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이 불합리해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우리 판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① 혈연관계의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친생추정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하는 것으로 친생추정 규정을 친자관계의 설정과 관련된 기본 규정으로 삼고 있는 민법의 취지와 체계에 반한다. ② 혈연관계의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가족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부부관계나 가족관계 등 가정 내부의 내밀한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혼인과 가족관계가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국가기관의 개입은 자제하여야 한다. ③ 법리적으로 보아도 혈연관계의 유무는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사유에는 해당할 수 있지만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 범위를 정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

위와 같은 대법원 다수의견에 대하여 종래 대법원 판례에서 친생추정 예외 인정 범위와 관련하여 판단 기준으로 삼은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은 ‘동거의 결여’뿐 아니라 친생추정 규정을 둘러싼 제반 환경의 변화와 개정된 민법 취지를 참작하여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었던 것이 외관상 명백하다고 볼 수 있는 다른 사정’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해석되어야 한다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더글로리’에서 하도영은 하예솔이 자신의 친딸이 아님을 알았지만, 박연진과 이혼하고 하예솔을 데리고 해외로 떠난다. 극중 하도영은 전재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예솔에게 훌륭한 아빠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민법상 친생추정 규정과 현재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러나, 실제로 하도영과 같은 아빠가 얼마나 있을까?

신종범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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