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304)-대의민주제의 파멸과 파시즘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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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304)-대의민주제의 파멸과 파시즘의 등장
  • 강신업
  • 승인 2023.03.3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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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오늘날 ‘대의민주제’에서 대표자들은 더는 민중을 대리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보장해주는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충성할 뿐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대부분의 유권자는 여러 정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보 모슬리(영국의 작가, 1951~)는 자신의 저서 <민중의 이름으로>에서 스스로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선거로 선출된 대표자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민주주의는 ‘민중이 통치한다’는 것이므로 민중이 통치하고 있지 않다면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의제는 이미 심각하게 고장이 난 까닭에 더는 민주주의라 부를 수도 없고 이제 버릴 때가 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오늘날 선거가 과연 민주주의를 담보하는가? 그 자체로 무가치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선거가 기득권 주류 세력들에 사로잡힌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선거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즉 선거에 의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이상은 이미 철 지난 바람이 되어 버렸다. 대의민주주의 신화는 과거 민중이 교육받지 못했던 시절에 안정된 중간계급 정부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유용한 목적에 봉사했다. 그러나 오늘날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들-정당, 미디어, 시민단체, 기타 각종 권력기관이나 단체-이 대표 선출을 좌우할 힘을 갖게 되면서 우리를 대표하는 대표자들은 우리보다 오히려 그런 권력 집단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민중들의 직접 정치에 대한 참여 욕구는 날로 커지고 민중들에게 대의민주제를 저버리게 하고 있다. 그리고 정말 심각한 문제는 민중을 대표한다는 자들의 타성과 부패에 실망한 시민들이 차라리 잔혹하더라도 한 명의 범죄자나 하나의 조직, 규칙의 통치하에 살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파시즘의 망령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의민주제가 실패한 원인은 기업에 의한 미디어의 소유 및 지배에 반대하는 투쟁이 이미 반세기 전에 패배했다는 것에 기인한다. 대중매체를 거의 모두 기업이 소유한 결과 민중은 언로가 막혔다. 사실 오늘날 민주 국가라고 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국민 대중이 가진 의견이나 정서가 아니다. 그래서 인터넷이나 유튜브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가능한 싸움의 장, 즉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마저 언론사나 기업이 침투 장악하면서 민주주의자에게 또 하나의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

대의민주제가 실패한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온라인을 타고 전방위로 확산하는 잘못된 허위정보와 선동은 국민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선거와 같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시스템을 와해시키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오늘날 ‘사상의 자유시장경제 이론’은 박물관에 들어간 지 오래다. 여론은 더 이상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정화되고 대표되는 게 아니라 인위적 세력들에 의해 왜곡 조작되고 있다.

민주적인 공동체에서 정치 참여는 직업이 아니라 권리이자 의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보수를 받는 직업정치인 집단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지 않고 보통 사람들 사이에 그 힘이 분산돼 있을 때만 성립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대의민주제에서는 민중의 대표들이 고액 임금을 받는 직업정치인이 되어 버렸다. 대의제 고장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대표들에 대한 고액 봉급이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자유’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에게 특별한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특권이 허용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대가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대의 정부 아래에서는 이미 수많은 고유한 특권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무책임한 정치 집단은 자신에게 적용되는 규칙을 자신들이 만드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국민 자유의 관점에서 이런 특권들이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이 필요하지 않다.

대의제의 파멸은 심각한 문제다. 대체할 방법을 급히 찾아 민중들의 대의제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파시즘이 판을 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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