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시즌2 (1)-교정 단계에서도 회복적 사법이 가능할까
상태바
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시즌2 (1)-교정 단계에서도 회복적 사법이 가능할까
  • 임수희
  • 승인 2023.03.30 13: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수희 부장판사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임수희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판사님! 감옥에 들어간 범죄자한테도 회복적 사법을 할 수 있나요?” 어느 강연에서 한 학생이 투박한 표현이나마 의미 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감옥이란 말은 요즘에는 쓰이지 않고 구치소나 교도소라고 하죠. 구치소에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용자들이 있고 교도소에는 형이 확정된 수형자들이 있습니다. 사형확정자는 구치소와 교도소에 있고요. 이 모든 사람들을 통칭해서 ‘수용자’라고 합니다. 이 학생이 제게 묻고 싶었던 핵심을 전문적인 법 용어로 다시 말해 보자면, ‘형사 재판을 받고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에 수용된 수형자에게도 회복적 사법이 가능한가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나아가 필요하다고까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의미 있는 질문인 것이지요. 회복적 사법은 범죄로 인해 해로운 영향을 받은 피해자와 가해자뿐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나 그 구성원들이 함께 범죄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요. 유엔 <형사 사건에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활용에 관한 기본 원칙>(2000)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은 형사 사법 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제6조)고 선언하고 있고, 유럽평의회의 <형사 사건에서 회복적 사법에 관한 권고>(2018)도 마찬가지로 회복적 사법은 형사 사법 절차의 어떤 단계에서도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제6조)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형사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 및 그에 대한 형이 확정된 단계, 즉 교정 단계에서 교도소에 수용된 수형자에게도 회복적 사법 절차 내지 프로그램이 활용될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 말은 어떤 분들에게는 범죄자와 가해자에 대해 온정주의적 태도로 비춰져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요. 교정 단계에서도 회복적 사법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말은,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에 그 거부감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형사 피해 사건이 교정 단계에 이른 피해자에게도 실질적 피해 회복을 포함하여 범죄로 인한 해악과 영향을 제거하고 온전한 일상으로 회복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피해 사건이 교정 단계에 왔다고 해서, 다시 말해 가해자가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있으니 그 형을 다 살고 나오면 그만이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그 이상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면, 피해자는 그 피해를 회복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징역을 살고 나왔다고 피해자가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피해가 저절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피해자가 민사 재판을 할 수도 있지만 손해배상 판결을 얻는다고 해도 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판결문은 무용지물이고 민사 재판으로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도 없으니 한계가 있다는 거지요.

나아가 어찌 보면 교정 단계야말로 회복적 사법의 기회를 갖기 좋은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피해자에게는 피해 초기에 즉각 신속히 그 해악이 제거되고 회복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 형사 사법 법제 하에서는 범죄자라도 무죄 추정 원칙 때문에 형이 확정되기까지는 재판을 거치며 자신의 억울함을 다툴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요. 그러한 불확실한 단계에서 회복적 사법이 시도되는 것에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게 될 리스크가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재판의 기회 없는 타협적·절충적 합의는 충분한 피해 회복에 이르지 못하게 할 아쉬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류의 사건들은 엄정한 재판을 거쳐 유죄 판결과 그 형이 확정되어 더 이상 무죄추정의 구애를 받지 않고 사실관계가 확정된 것을 전제로 드디어 안정적으로 회복적 사법 절차를 진행할 기회가 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정 단계에서의 회복적 사법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중요한 의미입니다. 회복적 사법에 있어서 ‘교정 단계’에의 주목,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임수희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아래 기사 후원 안내는 해당 글과 관계없는 법률저널 신문사의 후원 안내입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