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1-적응과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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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1-적응과 규제
  • 손호영
  • 승인 2023.03.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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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환경이 변하면 새로운 풍속도가 생깁니다. 채소값이 금값이 되면, 집에서 채소를 직접 기르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도 홈파머가 주는 상추를 직접 먹은 적이 있는데, 퀄리티에 놀란 기억이 납니다. 직접 홈파머에 도전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적응력은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기억이 납니다.

담뱃값이 한참 오른 때가 있습니다. 흡연자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노력 끝에 담배를 찾는 횟수를 줄이거나(이참에 아예 금연을 하거나), 담배를 찾는 횟수를 그대로 유지하되 다른 곳 예컨대 다른 여가생활의 비용을 줄여 가계수지를 맞추거나. 하지만 담배는 기호식품으로 중독성이 있습니다. 가격이 오른다 해서 바로 소비를 줄이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후자로 선택이 쏠리겠지 하는 무난한 예상을 하는 와중에, 흡연자는 제3의 길을 찾아냅니다.

기성 담배제품의 값이 올랐다? 직접 만들자! 창의적인 발상이 흡연자들에게 유행합니다. 지난 신문기사 하나를 찾아봅니다. “서울 성북구에 지난달 초(2017. 3.을 이야기합니다) 개업한 수제담배 가게를 찾아보니 ‘가정에서! 직장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 피는 천연담배잎 판매전문점’이라는 홍보 문구가 가게 전면 유리에 붙어 있었다. ‘누구나 쉽게, 5분 내 담배 한 갑 뚝딱!’이라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테이블에는 담배를 만드는 기계도 놓여 있었다. 종업원은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는 기계 한쪽에 필터를 끼워서 담배 모양으로 말아둔 종이를 넣고, 기계 다른 쪽 삽입구에는 갈린 담뱃잎을 수북이 쌓았다. 기계 스위치를 켜자, 기계가 자동으로 종이 속에 담뱃잎을 채워서 끝 부분을 보기 좋게 잘라낸 뒤 완성된 ‘수제담배’를 뱉어냈다. 종업원은 ‘담뱃잎을 구매하신 다음 직접 갈아서, 기계를 이용해 한 갑이나 한 보루를 만들어 가져가시면 된다’고 소개했다.”

수제담배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호기심에라도 접할 수 있겠다 싶은 그때, 세상은 호락호락하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담배는 강한 규제를 받는 제품이었기에, 담배제조업 허가를 받지도 않고 담배소매인 지정을 받지도 않은 사람이 수제담배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무허가 담배제조·판매로 형사처벌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은 수제담배 운영주들을 담배사업법 위반으로 기소합니다.

1심은 ‘담배 제조’가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만약 판매자가 담뱃잎을 구매한 손님에게 담배 제조에 필요한 장소 내지 보조도구 등을 제공하는 행위에 그쳤다면, 이것을 과연 판매자가 담배를 제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판매자가 미리 말은 담배를 팔거나, 직접 말아주는 경우는 담배제조로 보되(벌금 50만 원), 손님이 직접 마는 경우는 담배제조가 아닌 것으로 보았습니다.

검사는 무죄 부분에 항소합니다. 2심은 ‘담배’란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2심은 담배사업법상 담배의 정의를 살펴본 후, 궐련화 공정 이전이라도 궐련담배의 원재료인 이 사건 연초는 ‘담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담배의 기본적인 맛과 향 등 품질은 대부분 각초(잎담배) 이전단계에서 결정되어 해당 기업의 담배가공 기술이 체화되고 구현된 것이 궐련화 공정 직전의 연초’라는 이유입니다. 특히 담배 제조기업들은 연초 제조 기술을 영업비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실제 각초가 그 동안 담배로 취급되어 온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수제담배 판매자들이 공급받아 소비자들에게 판매한 연초는 이미 가공이 끝나 절각된 ‘연초’로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고 ‘냄새 맡거나 피우기 적합한’ 담배인 것이고, 이를 소매인 지정 없이 판매한 것은 담배사업법 위반입니다. 그리고 판매자가 궐련제조의 설비를 무료로 제공한 것은 실질적으로 연초 판매자의 궐련 제조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 또한 담배사업법 위반이 됩니다.

이번에는 피고인이 상고해서 대법원이 심리합니다. 대법원은 우선, 연초의 잎이 2001년 담배사업법 개정으로 담배에서 제외된 점을 지적하며 담배의 원료로 규율되는 이상, ‘연초 판매’를 인정하는 것은 ‘담배 판매’를 전제로 한 공소사실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 ‘제조’란 일반적으로 ‘물건이나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피고인은 담배제조시설을 손님에게 제공한 것 뿐이니 이를 제조라고 보는 것은 문언적 의미를 벗어나는 것이고, 손님이 직접 수행한 가공작업이 명목상에 불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담배사업법에 연초 잎 판매와 개별 소비자의 담배제조가 금지되어 있지 않은 이상, 판매자의 영업방식이 법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손님이 지불한 돈은 ‘완성된 담배’가 아닌 ‘담배의 재료 또는 제조시설의 제공’에 대한 대가라는 것입니다(대법원 2019도16782 판결).

담배값이 오르자 수제담배가 나타납니다. 기존 담배사업법의 규제는 수제담배 시장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엄밀히 보고는 이번 사안은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이쯤에서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 법원이 담배사업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또 다른 대응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사람의 적응력은 정말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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