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고시생 시절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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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고시생 시절을 추억하며
  • 박준연
  • 승인 2023.03.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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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요즘도 피곤할 때 신림동에서 2차 답안 작성을 연습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꿀 때도 있지만 추운 학원 강의실에서 2차 답안지를 마주하는 꿈을 꿀 때가 더 많다. 고시 준비를 어떻게 했냐고 누가 물어보면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아직도 꿈에 나오는 것이 좀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는 남아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고시 공부의 제일 힘든 부분은 과정보다 결과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입시도 그렇고 공부하는 과정보다 시험의 결과가 중요한 다른 시험도 많지만, 내 생각에 고시는 성인이 되어 몇 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그 결과가 진로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 같다.

그런데도 고시 공부의 과정에서 얻은 것도 있다. 특히 2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불안과의 싸움이었다. 선발하는 숫자도 적고 소위 말하는 고수들도 많은데 내가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제일 컸다. 그 불안과 싸우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단 매일 ‘출석 도장’을 찍는 것이었다. 공부하다 보면 능률이 오르는 날, 그렇지 않은 날이 있지만, 그와 무관하게 매일 정해진 시간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정했다.

2차시험이 가까워지면서 대학 도서관에서 신림동 독서실로 공부 장소를 옮겼다. 시기가 시기여서 시설이 좋고 인기 있는 독서실에는 자리가 없었지만, 2차시험 시기에 철거 예정인 건물에 있는 독서실 자리를 싸게 구할 수 있어서 오히려 잘되었다 싶었다. 곧 문 닫는 시설이라 사람도 거의 없는 열람실에서 책과 신문, 시사 잡지 등을 보고 답안을 작성하는 연습을 하면 온갖 불안이 엄습해 올 때가 많았지만 그 불안과 함께 지내는 과정 자체도 시험공부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이때의 경험은 뉴욕의 로스쿨에 진학했을 때도 도움이 되었다. 첫 학기를 마치고 기대했던 것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루 이틀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공부 방법을 바꾸어 그날그날 수업 내용은 되도록 그날 복습하여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노력했다. 그와 함께 매일 정해진 시간을 로스쿨 도서관에서 보내기로 했다. 수업을 마치면 도서관 1층에 가서 문 닫는 밤 11시까지 공부하다가 문을 닫으면 지하의 열람실에서 새벽 두 시까지 공부했다. 어떤 날은 집중이 잘 안 되어 한참 동안 앉아있어도 케이스북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도서관 자리를 지키는 것에서 의미를 두기로 했다.

미국 변호사로 일하면서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신출귀몰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변호사와는 다르게 실제 생활에서 변호사는 업무 시간의 80% 이상을 읽고 쓰면서 보낸다. 그래서 시험공부 할 때만큼, 혹은 그 이상 끈기 있게 책상머리에서 버틸 필요가 있다. 업무가 많이 바빠지면 고시생 시절처럼 생활이 단순해지기도 한다. 최소한의 수면과 휴식, 운동 시간,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는 시간 외에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 이는 나뿐만 아니고 함께 일하는 미국 변호사 선배들도 마찬가지이다.

‘과정을 즐기라’고 이야기하기에 고시 공부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한참이 지나 그때를 되돌아보는 지금, 고시생 시절의 경험도 이후의 생활에 이렇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절이 꼭 악몽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봤다. 그 시절에 처음 접한 매체에서 연재를 다시 한번 허락해 주신 법률저널에 감사드린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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