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09-좋은 법적 논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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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09-좋은 법적 논증이란
  • 손호영
  • 승인 2023.03.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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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좋은 법적 논증이 무엇일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단서를 찾고자 ‘법적 논증’에서 방점을 ‘법적’이 아닌 ‘논증’에 두어 봅니다. 좋은 법적 논증을 가리기에 앞서, 우선 좋은 논증이 무엇인지 알아보자는 취지입니다.

좋은 논증을 생각하다보니 철학자 툴민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툴민은 형식논리학의 기계적 합리성에서 벗어나 ‘수용가능한 논리’를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논증 모델이 유연한 모습을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논증이 ‘전제’와 ‘결론’이라는 틀만으로는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구체화해보면 그의 논증 모델은 이런 단계를 거칩니다.

① 그는 주장이나 결론을 지지할 원인으로 자료(Data, D)를 시작점으로 삼습니다. “주장이나 결론이 명시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질문에 대한 답이 자료(D)입니다.

② 주장 또는 결론(Claim, C)은 논증의 도착점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주장 또는 결론(C)입니다. 논증의 전체 구조에서 주장은 단계별로 있을 수 있고, 앞 단계의 주장은 뒷 단계의 주장을 위한 논거가 되기도 합니다.

③ 전제(Warrants, W)는 자료(D)와 주장 또는 결론(C)의 연결고리입니다. 자료로부터 주장이나 결론이 적절하고 타당하게 도출되었음을 전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료가 있으면 이러한 주장이나 결론이 정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전제(W)입니다. 전제(W)는 근거(Backing, B)에 의해 지지됩니다. 근거는 배후에서 전제의 권위를 세우고 통용하게끔 합니다. “위 전제가 타당하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근거(B)입니다.

④ 그는 예외나 반박의 조건들(Rebuttal, R)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예외나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보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예외나 반박의 조건들(R)입니다. 한정어(Qualifiers, Q)는 자료(D)가 전제(W)로 인해 주장이나 결론(C)에 전달되는 힘의 정도이고, ‘반드시’, ‘대체로’, ‘아마도’, ‘어쩌면’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외나 반박의 조건이 없다면 한정어는 ‘반드시’가 될 것이고, 예외나 반박의 조건이 강하다면 한정어는 ‘아마도’가 될 것입니다. “예외나 반대의 조건들로 인하여 주장 또는 결론에 대한 믿음의 정도는 어떠한가?”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한정어(Q)입니다.

정리하자면, 툴민 모델은 ‘어떤 논거(D)로부터 어떤 수준(Q)의 주장이나 결론(C)을 도출할 때, 근거(B)로 뒷받침된 전제(W)를 제시하여 그 연결고리를 공고히 하고, 반론을 수용하거나 반박하는 과정(R)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연서는 한국인이다.’라는 주장 내지 결론은 툴민의 모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논증 과정을 거친 결과이다.

자료(D): 연서의 부모님은 한국인이다. / 근거(B): 한국 국적법에 의하면, / 전제(W): 한국인의 자녀는 대체로 한국인이고, / 예외나 반박의 조건(R): 미국에서 태어난 연서가 미국으로 귀화한 것이 아니므로, / 한정어(Q): 아마도 / 결론(C): 연서는 한국인이다.

툴민 모델의 첫째 핵심은, 자료(D)로부터 결론(C)에 이르기 위해서는 전제(W)가 결합되어야 하고 그 전제(W)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지지 작용(B)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 핵심은, 한정어(Q)와 예외나 반박의 조건(R)을 설정하여 주장이나 결론(C)이 잠정적일 수 있음을 밝힌 점입니다. 이 모델에 따를 경우, 논증 과정에서 번복가능성에 열린 검토를 하게 됩니다.

법적 논증도 비형식논리학의 일종으로,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 타당한지에 대한 답을, 그 답의 올바름을 뒷받침하는 이유와 근거를 찾아가며 좇아갑니다. 이런 법적 논증을 섬세하게 살펴보면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툴민 모델을 성실히 따름을 알 수 있고, 두 가지 특성을 마찬가지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법적 논증에서도 전제(W)와 전제(W)를 뒷받침하는 근거(B)가 중요합니다. 결론으로 향하는 길목인 전제(W)와 그 근거(B)에서 논쟁이 서로 격렬히 맞붙습니다. 둘째, 예외나 반박의 조건(R), 한정어(Q)가 설정됨으로써 법적 논증의 결론이 임시적임을 알려주고, 법적 논증의 ‘일단 옳다’는 결론은 반론에 의한 폐기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다툼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둔 법적 논증은, 그만큼 유동적이고 역동적입니다. 자신의 결론을 지지하는 법적 논증을 강고히 하고자 함은 역설적으로 언제든 폐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법적 논증과 일반 논증을 완전히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논리적 오류를 배제하고, 사안과 관련되고 충분한 논거를 통해 수용 가능한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따라서 좋은 법적 논증을 공부할 때는 좋은 일반 논증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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