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08-절도와 사기의 구분, 법률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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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08-절도와 사기의 구분, 법률가의 역할
  • 손호영
  • 승인 2023.02.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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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다른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문제를, 법률가들은 세심하게 다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현실과의 괴리’라고 보아야 할지, ‘법의 엄밀성’이라고 보아야 할지 저는 아직 결론짓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법의 본질이고, 법률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50만 원 벌금 사건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매장 바닥에 떨어뜨린 지갑을 주인이 줍습니다. 주위에 있던 손님에게 주인이 물었습니다. “이 지갑, 선생님 것 맞으신가요?” 그러자 손님이 대답합니다. “네, 맞습니다.” 그러고는 지갑을 가져갑니다. 문제는 그 지갑이 그 손님의 지갑이 아니라 다른 손님이 떨어뜨린 지갑이었다는 것입니다.

진짜 지갑 주인이 자신의 지갑을 가져간 사람을 고소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자 지갑을 가져간 손님이 반발합니다. “내 것인 줄 알았다. 잘못 알았다.” 두 손님의 지갑은 색깔은 유사할 수 있어도, 하나는 민무늬이고 하나는 체크무늬라는 점에서 서로 차이가 제법 납니다. 그러니 지갑이 자기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1심은 이런 이유로 지갑을 가져간 손님에게 50만 원의 벌금을 내라고 합니다.

일반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내용만으로 수긍할지 모릅니다. “자기 지갑이 아닌 줄 알면서 가져갔다? 잘못했군! 50만 원 벌금도 적정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률가라면 질문해야 합니다. “어떤 죄였을까?”

1심에서는 지갑을 가져간 손님을 ‘절도’로 의율했습니다. 피고인은 항소했습니다. “그 지갑이 내 것인줄 알았다.”는 주장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절도는 아니다.”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가정을 덧붙입니다. “사기죄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사기죄로 의율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검사는 피고인의 주장에 대비하여 예비적 죄명으로 사기를 추가합니다. 이제 2심은 피고인이 지갑을 가져간 행위가 절도인지, 사기인지 법리적으로 규명해야 합니다. 2심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피고인이 자신을 지갑의 소유자라고 착각한 (매장 주인)의 행위를 이용하여 그 지갑을 취득한 이상 이를 두고 피고인이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피고인의 이 사건 당시 행위를 피해자의 재물을 절취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매장 주인)은 매장 고객이었던 피해자가 놓고 간 물건을 습득한 자로서 적어도 이를 피해자 또는 소유자에게 반환할 수 있는 권능 내지 지위에 놓여져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피기망자인 (매장 주인)의 의사에 기초한 교부 행위를 통해 피고인이 지갑을 취득한 이상 이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인다.” 이에 따라 2심은 피고인을 사기죄로 의율합니다. 다만 양형은 유지합니다. 벌금 50만 원입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갑니다. 대법원이 말합니다(대법원 2022. 12. 29. 선고 2022도12494 판결). “기망의 방법으로 타인으로 하여금 처분행위를 하도록 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에는 절도죄가 아니라 사기죄가 성립한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공소외 2는 반지갑을 습득하여 이를 진정한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지위에 있었으므로 피해자를 위하여 이를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었다. 나아가 공소외 2는 이러한 처분 권능과 지위에 기초하여 위 반지갑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반지갑을 교부하였고 이를 통해 피고인이 반지갑을 취득하여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공소외 2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피고인의 행위를 절취행위로 평가할 수는 없다.”

1, 2, 3심에 이르도록 결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유죄, 벌금 50만 원. 피고인은 항소했지만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였습니다. “나는 내 지갑인 줄 알고(다른 사람 지갑인 줄 모르고) 가져갔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 지갑인 줄 알면서 가져가는 것은 잘못’이라는 명제는 동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도 대부분 그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법률가는 조금 다릅니다. 법률가는 ‘잘못’이라는 것을 두루뭉술하게 이해하지 않고, ‘위법’인지 여부를 판단하기에, 이 사건의 피고인에게 의율되어야 하는 죄명이 ‘절도’인지 ‘사기’인지 열심히 가름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법학은 발전, 다시 말해 정교화되어 가는 것은 물론입니다.

다만 혹시나 법학의 정교화가 법률가들의 공방에서 사용되는 수단과 도구으로 사용되어, 자칫 법망을 피해가는 틈새만 늘어나게 되며, 결국 법률가들의 판단이 일반 사람들의 (법)감정에서 멀어질 우려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다른 사람 지갑인 줄 알면서 가져갔다.’는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검사가 예비적 공소사실로 사기를 추가하지 않고 절도죄로만 판단을 받고자 했던 경우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고민이 됩니다. 본질적으로 과연 법률가의 역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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