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298)-나는 이순신을 따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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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298)-나는 이순신을 따르겠다
  • 강신업
  • 승인 2023.02.1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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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필자는 2023년 2월 9일 몇몇 지지자들과 아산 현충사를 방문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컷오프를 당하고 현충원을 방문한 후 두 번째 행보다. 필자가 현충사를 방문한 이유는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의 표상, 성웅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을 닮고 배우기 위함이다.

조선 최대의 국난인 임진왜란은 국토와 민생을 처참하게 파괴했다. 전쟁이 시작된 뒤 보름여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5월 2일) 선조는 급히 몽진해 압록강 변의 의주(義州)로 피신했다(6월 22일). 개전 두 달 만에 조선은 멸망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이순신은 임진년 5월 7일 옥포해전부터 계유년(1598) 11월 18일 노량해전까지 23여 회의 전투를 치르고 모두 승리하고 나라와 백성을 구했다.

이런 승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의 불굴의 용기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순신은 1572년 무과 시험을 치르던 중 타고 있던 말이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물론 낙방했지만, 다시 일어나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다친 다리를 싸매고 과정을 마쳤다. 그의 용기와 불굴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순신은 두만강 어귀에 있는 녹둔도의 둔전관으로 있을 때, 갑자기 여진족의 기습공격을 받아 부하 2명이 전사하고 60여 명이 포로로 잡혀간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직접 몸소 출격하여 오랑캐를 전멸시키고 포로를 구출해 왔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왼편 다리에 화살을 맞았는데, 그때도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앞장서서 전투에 임했다. 훗날 왜적 함대가 명량 앞바다로 쳐들어왔을 때 그에게는 전선이 13척 밖에 없었지만,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必死卽生 必生卽死)이라 외치며 앞에서 전투를 이끌어 결국 10배가 넘는 적군을 물리쳤다.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의 산물이다.

이순신은 병조정랑(정5품) 서익(徐益)이 가까운 사람을 특진시키려고 한 것에 반대하다 좌천을 겪기도 했다. 또한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려고 발포 객사의 오동나무를 베어가려고 하자 관청 물건이라고 제지하기도 했다. 한 번은 말직이지만 중앙에서 근무하게 된 그에게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을 율곡 이이가 이순신을 만나 보고 싶어 한 것이다. 그때 이이는 이조판서였다. 류성룡에게서 의사를 전해 들은 이순신은 그러나 거절했다. 같은 가문(덕수 이씨)이므로 만나도 괜찮겠지만, 지금은 그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중직에 있으므로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겨우 9세 차이였지만 탁월한 능력과 눈부신 경력으로 조선의 핵심적인 정치가로 자리 잡은 같은 가문의 이조판서가 그때까지도 변방과 중앙을 오가며 부침을 거듭하고 있던 종8품의 말단 무관을 만나 보고 싶어 했을 때, 부적절한 정실의 개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한편 이순신은 전쟁은 현장의 지휘관이 한다는 원칙을 지키다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1597년 1월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죽음 직전에 이르는 혹독한 신문을 받은 끝에 4월 1일 백의종군 명령을 받고 풀려났다. 그는 국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고도 끝내 전쟁은 현장 지휘권이 지휘권을 갖는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많은 위인이 그렇고 바로 그런 측면이 그들을 평범한 사람들과 구분시키는 결정적인 차이지만, 이순신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면모는 원칙을 지키는 강직한 행동이다. 필자는 성웅을 따를 것이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거대한 운명을 극복하고 위업을 성취한 인간의 전범, 이순신, 나는 그를 따를 것이다. 이순신을 따라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 나라 구하는 일에 나설 것이다. 기득권 적폐 세력을 일소하고 종북 주사파를 척결할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정치에 나서는 이유다. 나는 현충사에서 이순신 장군의 불굴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지는 원칙과 소신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이제 시작이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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