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온 세상 그리고 세상 너머까지: 베토벤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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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온 세상 그리고 세상 너머까지: 베토벤의 교향곡
  • 최용성
  • 승인 2023.02.0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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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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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음악의 성인(聖人) 즉 악성(樂聖)이라고 불릴 정도로 널리 존경받는 대 작곡가이다. 서양 음악사를 통틀어 음악가에게 성자라는 호칭이 부여된 경우는 그 전은 물론이고 그 후에도 없었다. 무엇이 한 사람의 작곡가를 성자로 부르게 한 것일까?

베토벤은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지만 그의 삶은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어릴 때는 주정뱅이인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음악가로서 경력을 쌓아가면서부터는 청력이 점점 약해지더니 급기야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랑하는 여인과는 맺어지지 않아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늘그막에 친아들처럼 사랑을 준 조카는 베토벤의 기대를 저버리는 사고뭉치였다. 인정받는 음악가였지만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세상의 편견과 싸워야 했다. 독재자에 반대하고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신봉자였던 그는 이러한 정신을 작품 속에서 또 평소 언행을 통하여 표현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으니 신분제가 강고했던 당대와의 불화는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 병마로 인한 통증에 시달려―매독이라는 주장이 한때 강하였지만, 베토벤의 모발에서 당시 매독 치료제로 쓰인 수은이 검출되지 않았고 납중독이라는 결론이 내려졌기에 매독설은 근거를 잃었다―평생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병인(病因)이 무엇이든 당시 흔한 진통제인 아편에 의존하지 않고 고통을 참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클래식 음악은 즉흥성보다는 논리적 구성력을 기초로 하므로 수학적 정밀성을 갖고 작곡에 임해야 한다. 통증을 없애려고 아편을 복용하면 맑은 정신으로 음악을 쓸 수 없기에 밀려오는 통증을 참아가며 걸작들을 작곡한 것이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베토벤의 모발 검사 결과 납중독 외에 아편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된 연구자가 집에 돌아와 극심한 고통을 인내하며 작곡된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위안을 받는다며 눈물을 흘린 사연이 나온다. 베토벤의 음악은 크나큰 고통과 역경 속에서 작곡되었지만, 그의 음악 안에는 자신의 고통으로 인한 염세나 세상에 대한 원망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의 음악은 최고의 논리적 완결성에 기초하면서도 인간의 희로애락(喜怒愛樂), 자연의 아름다움, 궁극에의 희구, 삶의 신비와 거룩함, 영성(靈性), 인류애 등등 온 세상 그리고 세상 너머까지 품어 궁극의 진리와 덕과 아름다움에 이르렀기에 우리는 그를 음악의 성자로 부르는 것이다.

위대한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 일은 영혼의 여행과 같다. 32곡의 피아노 소나타, 16곡의 현악사중주곡. 9곡의 교향곡을 듣는 것이 특히 그렇다. 오늘은 교향곡만 살펴보자.

베토벤의 교향곡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그가 남긴 교향곡 9개 안에는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여정이 펼쳐진다.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수한 설렘에서 시작하여(제1번) 자신만의 어법으로 고전파 교향곡의 정점을 찍는다(제2번). 단 두 음만으로 장대한 발전부와 코다를 가진 첫째 악장을 구현한 영웅교향곡은 음악사에서 처음으로 교향곡을 장대한 서사시로 만들었다. 이어지는 장송과 자유로운 세상의 도래를 알리는 스케르초, 변주곡을 도입한 파격적인 피날레까지 기존의 교향곡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제3번). 이어 불의에 항거하는 서사를 내려놓고, 내면의 충일감을 고요하고 긴 호흡 속에 기품있게 그려낸 또 다른 세계를 선보인다(제4번). 거의 같은 시기에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교향곡이 나타난다. 단 4개 음의 모티브만으로 자신의 운명과 마주하여 승리하려는 의지를 이보다 더 숭고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제5번). 자연의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조화에 빠져들다가(제6번), 바그너가 춤을 거룩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한 리듬의 향연으로 생명의 펄스를 표출하더니(제7번) 고졸하고 소박한 단순함, 작은 것의 아름다움으로 돌아온다(제8번). 이것만으로도 도저히 한 작곡가가 이루었다고 믿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이지만 베토벤은 다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기악곡인 교향곡에 처음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결합한 것. 그 결과 우주의 비밀이자 생명의 원천이 내 안과 밖에 함께 있음을, 구원은 홀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이루는 것임을 감동적으로 구현해낸 기념비적 교향곡 <합창>이 탄생한다(제9번). 인류는 하나이다. 인종도, 관습도, 민족도, 종교도, 정치도, 그 어느 것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 이렇게 베토벤은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위대한 정신을 구현한다.

답답하고 어두운 시대에 베토벤의 교향곡과 함께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을 떠나보자. 다시 돌아오면 현실의 무게를 견딜 힘을 얻을 수 있다. 온 세상 그리고 세상 너머까지 품게 만드는 힘! 그래서 베토벤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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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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