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03-전문가가 감당할 무게
상태바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03-전문가가 감당할 무게
  • 손호영
  • 승인 2023.01.13 1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전문가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요? 의사결정의 주체는 따로 있고 전문가는 조력자에 해당할 뿐이니 전문가는 일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면, 전문가는 도대체 왜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문가가 완벽해야 된다고 한다면, 그 또한 지나칠 것입니다. 합리적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충분하다고 보면 될 것 같은데, 그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참 섬세하면서 어려운 일입니다.

변호사는 전문가입니다. 의사나 회계사나 다른 직역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로부터 자격을 공인받고 활동하는 전문가입니다. 전문가로서 활동하면서 우리는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요? 최근 대법원에서 그에 대한 법리를 이야기한 것이 있어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100세 노령의 아버지가 가진 부동산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부동산을 팔고자 했기에 딸이 아버지를 대리해서 부동산을 매도합니다(매매대금 45억 5,000만 원). 중도금 지급까지는 원활하게 되었는데 잔금지급에서 조금 삐꺽거립니다. 잔금지급 의무 불이행 여부를 놓고 계약이 해제되었는지 아닌지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매수인은 아버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의 소를 제기합니다.

딸은 아버지를 대신해 변호사를 알아보고 사건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1심에서 아버지는 패소합니다. 아버지는 항소하였는데, 딸은 변호사에게 묻습니다. “이 부동산을 제3자에게 팔아도 될까요?” 1심에서 진 상태여서 불안했기에 물었을 것입니다. 변호사는 말합니다.

“소송중이어도 괜찮다고요, 소송중이어도 매매하는 거 괜찮다고요”, “소송 중에 매매해도 상관없다니까요.”, “가져가면 그걸로 된다고, 그걸로 끝이고.”, “그러면 이쪽, 이쪽 소송에서는 이쪽 소송 결과 그렇게 불리하지 않고 내가, 거의 이겨요, 거의 100% 승소가 되니까.”, “넘겨버리면 문제없어요. 법적으로 문제없고 만약에 뭐 소송은 별도야, 소송 별도. 그 사람은 아무 문제없어요. 매매 문제없다고요.”

그 말을 믿은 아버지와 딸은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줍니다(매매대금 120억 원). 하지만 잘 알고 계시겠지만, 부동산 이중매매는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아버지와 딸은 배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각 벌금 200만 원, 선고유예).

이제 아버지와 딸은 변호사가 잘못된 조언을 하였고 그에 따랐다가 형사처벌을 받았다면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합니다.

1, 2, 3심 모두 결론이 같았습니다. 대법원(2018다300364)이 말합니다. “피고(변호사)는...이 사건 각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이...소송물이나 공격방어방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등을 설명하는 한편,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에 따를 경우 배임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음을 법률전문가의 입장에서 성실히 고지해 주었어야 한다. 그런데도 ...만연히 승소를 장담하면서 이 사건 각 부동산을 매도하는 것에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대답하였고, 원고들이(아버지와 딸)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말한 뉘앙스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였습니다. 만약 변호사가 배임죄에 성립될 가능성은 있지만, 소송에서 이길 확률이 높으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면, 변호사의 책임은 인정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법원도, “만약...질의 사항이 자신의 법률지식과 경험 범위를 벗어난 것이어서 답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거나 그에 관하여 일반적이거나 확립된 견해와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면, 의뢰인이나 그의 대리인에게 다른 법률전문가에게도 상담을 받도록 조언하거나 적어도 이를 알림으로써 숙고하여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면,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깁니다.

변호사마다 업무 스타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보다 확신에 찬 어투로 이야기해서 불안을 덜어주는 리드(lead)식 스타일을 가질 수 있고, 어느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조력자(counselor)식 스타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마다 스타일이 다르므로 어느 스타일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변호사가 전문가로서 역량은 언제나 갖추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판사가 되어 법원에 들어와 여러 선배 부장님, 판사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입니다. 정말 대단하시다. 지금까지도 정성을 이렇게 쏟으시는구나. 일이 몸에 밴 듯한 모습들, 깊은 사고와 통찰력, 무엇보다 일을 대하는 자세의 진정성. 많이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어렸던 그때 동기들 몇몇은, 나이가 들어서도 저렇게 열심히 일해야 된다니 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조금 아쉽게 바라봤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바로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고, 공부를 계속해나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