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복수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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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복수와 용서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3.01.0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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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요새 ‘더글로리’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로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주인공이 가해자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벌이는 복수극이라는 게 대략적인 설명이다.

트렌디한 연애물로 명성을 날리다 판타지며 시대극으로 장르를 확장해서도 대박을 터트린 흥행 보증 수표 김은숙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됐지만 학교폭력이라는 소재, 복수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어두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재밌게 봤다며 추천을 하고 연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도 쏟아지니 점점 마음이 끌리고 있는 중이다. 유명한 복수극 중 하나인 영화 ‘킬빌’의 주인공이 암살자였던 것과 달리 교사인 주인공이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가해자에게 어떤 식으로 복수를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기고 말이다.

통쾌한 복수극을 보면서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복수극이 인기를 끌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유는 ‘인과응보’의 실현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나 피해를 준 사람은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그것이 바로 ‘정의’라는 인식. 형벌도 복수의 정의로부터 시작됐다.

고대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의 법전에 실린 내용으로 널리 알려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의미가 그렇고 고조선의 8조법도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하거나 타인에게 끼친 손해를 재물이나 몸으로 갚도록 하는 등 법을 통해 ‘복수’를 실현하고 있다.

물론 형벌에는 ‘응보’로서의 의미 외에도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지를 알리는 예고, 엄격한 형벌을 규정함으로써 범죄행위를 기피하도록 하는 위하로서의 기능을 한다. 또 범죄자를 격리해 사회의 안전을 지키고 수형자의 입장에서는 속죄의 의미도 갖는다.

최근에는 ‘응보’보다는 ‘회복’에 더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사법적 정의의 의미를 바꿔가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회복에 방점을 찍는다고 해도 적절한 응보가 없이는 피해자의 마음에 온전한 회복이 깃들기 힘들다는 점에서 응보는 여전히 사법적 정의의 중요한 요소가 되며 형벌의 본질은 응보의 실현이다.

때문에 죄를 지은 자에게 죗값에 맞는 형벌을 내리고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형의 부과와 집행 모두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 무조건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는 게 적절한 응보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훨씬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죄에 터무니없이 짧은 형이 선고되고, 생계형 범죄라거나 상대적으로 비난가능성이 낮은 범죄에 엄중한 벌이 내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집행에 있어서 가장 논란이 될 수 있을 부분은 ‘사면’이다. 사면 중에서도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사면’이 특정한 ‘죄’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일반사면’에 비해 악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크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이 이뤄졌다. 이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와 횡령 등으로 17년의 징역형과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8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성탄절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이로 인해 82억 원의 미납 벌금이 면제됐고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감옥 밖에서 지낸 시간이 많아 실제 복역 기간은 고작 1년 8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응보는 실현되지 않았다.

사면은 왕정 시대에 형벌권을 가진 군주가 스스로의 권한으로서 죄인을 용서하는 은사로 기능했다. 당연히 삼권분립이 확립된 현대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제도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특사의 이유로 ‘국민통합’을 들었지만 오히려 특사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 더 큰 갈등만 야기하고 있다.

특사는 형벌의 의의를 무시하는 제도이자 형벌을 법으로 규정하는 입법권을 침해하고 형을 결정하는 사법권을 침해하며 적절한 응보와 가해자의 속죄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피해자의 용서할 권리를 침해한다. 효과는 없고 폐해만 존재하는 특별사면 제도는 조속히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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