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32)-‘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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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32)-‘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2.12.16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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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무유(가명)

1. 변호사시험에 최종 탈락하기까지 –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어느덧 변호사시험에 최종 탈락을 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네요. 대부분의 오탈자들이 ‘나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저도 그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소위 운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부상으로 그만두어야 했고 다소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적당히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적당히 좋은 성적을 얻고 도전하는 모든 것은 생각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음에도 ‘이게 되네?’의 연속이었습니다. 학부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과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 로스쿨에 입학한 선배가 너도 로스쿨에 와보는 것은 어떠냐는 권유에 별 준비 없이 로스쿨에도 지원을 해보았습니다. 역시 되는 놈은 되는 건지 기업에 먼저 합격을 하였고, 부담 없이 치른 로스쿨 입시도 덜컥 합격해버렸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인싸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학부 시절 학생회장을 하며 너무 재미있는 시절을 보냈기에 로스쿨에서 한 번 더 그런 학부 생활을 하고 싶어서 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게 제 잘못이었던 것 같아요. 많은 로스쿨 학생들이 변호사가 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공부를 하는데 저는 학부 때처럼 학생회도 하고 이런저런 동아리 활동을 하며 너무 즐겁게 보낸 게 화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그래도 ‘거의 절반은 합격하는데 설마 내가 안 될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나름 성적도 나오면서 변호사시험 합격에 대한 걱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첫 변호사시험을 아깝게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첫 시험 탈락은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변호사시험에서 가장 배점이 큰 민사법에 자신감이 있었기에 탈락할 거라 예상 못했고, 아깝게 떨어진 성적을 확인하고 그래도 내년엔 합격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굳이 학원을 다닐 필요가 있나 싶어 혼자 공부를 했고 다음 시험에서 또 비슷한 점수로 낙방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남들보다 1년을 더 공부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때부터 마음속에 작은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학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고 비싼 학원비를 지불하며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학원 모의고사에서 1등을 여러 번 했고 모범답안에도 선정되면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죠.

그때만 해도 모 강사님이 하신 말씀의 주인공이 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바로 국가시험에서 장수생이 되느냐 마느냐는 운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이었죠. 실제로 소위 1타 강사로 유명한 강사님이셨지만 자신이 딱 그 케이스였다며 시험 준비가 길어질수록 이런저런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터진다는 말이었습니다. 보통 경제 문제, 가족 문제, 건강 문제, 이성 문제 이 네 가지를 말하셨죠. 저는 이 중 건강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학원에서도 성적이 좋았었기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극도의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결국 시험 도중 급성 위궤양이 발생했고 시험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정말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그때는 남은 시험일 동안 몇 날 며칠을 울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는 차마 아파서 시험을 다 치르지 못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쯤 되면 세상이 내가 변호사가 되지 못하게 막는 느낌이었지요. 이후 큰 실망감으로 네 번째 시험은 제대로 준비하지를 못하여 또 비슷한 점수를 받고 결국 최종시험만 앞두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기회는 단 한 번, 길어진 수험생활에 또 외부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것이죠. 신림동 수험가의 학원과 독서실은 반복적으로 문을 닫았다 열었고 코로나 상황에 시험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증가하는 코로나 환자들만큼 화두였습니다. 법무부는 코로나 확진 시 시험에 정상적으로 응시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된 입장을 발표하지 않다가 시험 직전에야 부랴부랴 미봉책을 내세워 발표했고, 저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게 마지막 한 달은 외출도 최소화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치른 시험 와중에 변호사시험장에서 일부 수험생들의 시험장 법전 형광펜 표기 이슈와 일부 로스쿨의 사전 문제 유출 사태까지 벌어졌고 이런저런 이슈에 휘둘린 저는 결국 또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함으로써 최종 탈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변호사시험에 최종 탈락한 핑계입니다. 사실 이러한 핑계들보단 제 노력과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이겠죠. 저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합격해낸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니까요. 다만 사연 없는 무덤이 없듯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던 ‘핑계’를 한 번 누군가에게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최종 탈락해도 끝까지 다른 길을 가면 된다고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께는 차마 이런 핑계를 댈 수가 없었거든요.

여기에라도 이렇게 적고 나니 다시 한번 홀가분해지는 기분입니다.

2. 핑계를 극복하고 다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래도 저는 여전히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에 다른 오탈자들과 대화해보면 부양할 가정이 있어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거나, 부모님께서 압박을 가하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있거나 했는데 저는 언제든 돌아가서 기댈 부모님이 계셨으니까요. 시골에서 농사와 회사 일을 겸하시던 부모님은 제가 마지막 시험을 준비할 때쯤 정년 은퇴를 하셨고 농사에 집중하셨습니다. 언제나 변호사가 안 되어도 괜찮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라고 응원해주시던 부모님 덕에 저는 시험에 떨어지고도 이런저런 압박이 없이 온전히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년간 부모님 농사일을 간간이 도우며 정말 한량처럼 지냈습니다. 로스쿨 3년, 수험 4년 거의 7년을 앉아서 수험생활만 했기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과 게임, 드라마, 영화 등을 실컷 즐기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법학 서적과 수험 서적을 읽을 때는 그렇게 졸렸었는데 밀린 소설들과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니 정말 시간이 잘 갔습니다. 그러면서 어릴 적에 이야기를 쓰거나 만화를 그려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간단하게 만화를 그려서 올렸습니다. 다소 부족한 그림이지만 사람들이 점점 좋아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의 저는 축구선수라는 꿈의 좌절 후, 남들 이목에 맞추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면서도 그 당시에 한국에서 만화가는 비전이 없는 직업이었기에 시골에서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는 공부를 하였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려다 전문직이라는 변호사가 그저 좋아 보여서 절실하게 원하지도 않으면서 도전하게 되었죠. 결국 그 결과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참담했습니다. 그러한 실패를 겪고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된 후에야 제가 좋아하는 게 뭐였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야 하니까 하는 도전이 아닌 하고 싶어서 하는 도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밤에 노력을 해야 하지만요. 그래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요즘은 다시 제 삶에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의미 없이 보내던 밤들이 희미하지만 별들로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흥행을 한 오징어 게임과 천만 영화 범죄도시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 허성태 님은 저와 비슷한 나이인 36살에 배우로서의 꿈에 도전하셨습니다. 저라고 혹은 다른 오탈자들이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인생은 원래 도전과 실패와 성공의 연속입니다. 비록 변호사가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우리들의 삶이 실패한 건 아닙니다. 요즘 유행하는 밈처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요. 그 마음을 키우는 데 마중물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중물 지원금으로 그림을 그릴 태블릿과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했거든요. 물론 부모님께 부탁하여 할 수도 있었지만 마중물 프로젝트에 지원함으로써 일종의 출사표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제가 여러 번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며 그 힘든 마음을 알기에 합격하면 신림동과 각지에서 고생하는 수험생들을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비록 변호사로서는 아니게 되었지만 후에 제가 생각하는 새로운 목표를 이루어 사랑샘재단처럼 저와 같은 사람들의 마중물이 되는 제가 되어있으면 좋겠네요.

글을 다른 오탈자분들도 읽으실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도 다른 분들의 에세를 읽어보고 공감도 하고 했거든요. 삶은 계속되고 우리들은 다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요한 건 꺾지 않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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