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은 지난 6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전 상임이사 송모(59) 씨가 인사 혜택 등을 대가로 수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임원 선임이나 승진·전보 등을 대가로 돈을 수수하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이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인 코이카 내에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감사원은 올해 3~4월 코이카를 상대로 실지 감사를 벌인 결과, 사회적가치경영본부 이사인 송 씨가 2018~2020년 인사와 계약 체결 등에 있어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위원장직을 겸하면서 임직원 등 22명에게서 3억85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 중 15명으로부터는 임원 선임, 승진, 전보, 계약 등을 대가로 2억9300만 원을 수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이날 송 씨에 대해 수뢰 등 3개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또 손혁상 이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등 15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나머지 7명은 건넨 액수가 적거나 혐의가 불확실해 검찰에 수사 참고자료를 통보했다고 한다.
송 씨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활동했던 부산YMCA 사무총장 출신으로 2017년 이미경 당시 코이카 이사장이 이른바 ‘적폐 청산’을 위해 만든 혁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듬해 2월 비영리단체 출신으로는 최초로 코이카 상임이사에 임명됐다. 송 씨는 2018년 12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약 2년 동안 이사장을 대신해 코이카 내부의 인사, 계약 업무 등을 총괄하는 등 사실상 전권을 행사했다. 감사원은 송 씨가 과거 시민단체에 함께 근무했던 대학 선배 A 씨로부터 9회에 걸쳐 6400만 원을 수수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2019년 10월 A 씨를 코이카 자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임했다고 전했다. 2020년 7월에는 공정무역·개발협력사업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업체로부터 2820만 원을 받았다. 송 씨는 이후 코이카 담당자에게 “신규사업 추진 및 입찰공고 등 계약 진행 상황을 업체 대표와 공유하라”고 지시해 계약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코이카의 이인자 자리에 앉아 매관매직에다 업체 뇌물을 받아 챙기는 ‘탐관오리’ 짓을 한 것이다.
또 그는 직원들에게 돈을 받고 근무 평가를 조작해 승진을 시키거나 선호하는 해외사무소로 발령을 내기도 했다. 송 씨는 2018년 11월 승진후보자 명부 순위 밖에 있던 B 실장으로부터 2500만 원을 받았다. “이후 근무평가를 조작하는 부당한 방식으로 B 씨를 3급으로 승진 임용시켰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송 씨는 또 인사위원장으로 각종 전보를 총괄하면서 희망하는 해외사무소 발령을 내주는 대가로 6명으로부터 8700만 원을 수수했다. 압권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손혁상 이사장도 경희대 교수 시절인 2020년 4월 송 씨에게 자녀 학비 명목으로 1000만 원을 줬고, 같은 해 12월 이사장직에 선임됐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개발도상국들에 공적 원조를 해주는 외교부 산하 공공 기관에서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매관매직(賣官賣職) 범죄가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코이카는 내부 제보로 송 씨를 조사했지만 ‘중대 사안이 없다’며 면직 처리로 끝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문 정권의 전형적인 ‘코드인사’의 적폐로 보인다. 취임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송 씨는 “사람 중심의 혁신을 하겠다”고 했지만, 뒤에선 돈 받고 자리를 팔았다니 참으로 파렴치하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의 인사 비리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희망을 짓밟는 중대범죄다.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버젓이 매관매직이 자행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다. 공적개발원조(ODA) 등 한 해 1조 원을 주무르는 코이카는 갑질, 낙하산 인사 등 비리가 끊이지 않는 복마전 같은 정부 산하단체다.
이번 일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청탁·불공정 인사 적폐를 근본적으로 도려내지 않는 한 공기업 개혁은 허상일 뿐이다. ‘낙하산’, ‘철밥통’이라 불리는 다른 공기업에 유사사례가 없는지 전수조사를 하는 등 감시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검찰도 공공 기관의 인사 비리와 이권 거래 실상을 철저히 밝혀 일벌백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