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7-판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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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7-판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 손호영
  • 승인 2022.12.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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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양심적 병역거부는 허용될 수 있는가(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가, 양심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미성년 손자녀를 입양할 수 있는가(손자가 아들이, 손녀가 딸이 될 수 있는가)”,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고 휠체어 탑승설비가 장착되지 않은 것이 장애인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거나 적극적 시정이 필요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인가”, “성년이 된 뒤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게 된 경우, 어머니가 속한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

사회에서 제기될 법한 문제들이고 실제 사건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법원은 이 문제들에 성실히 답했습니다(각 주제들은 모두 제가 칼럼에서 다룬 것들입니다). 그저 결론만 제시하지 않습니다.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와 근거를 함께 덧붙였습니다.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근거’의 결합, 이것을 우리는 ‘논증’이라고 하고, 법률 분야에서 쓰일 때 특히 ‘법적 논증’이라 합니다.

논증이라고 하면 ‘연역’과 ‘귀납’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과연 ‘연역’, ‘귀납’이 서두에 제시한 질문에 대해 온전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방향과 길을 충분히 안내할 수 있을까요?

연역논증은 보편 법칙에서 구체적 결론을 필연적으로 도출하고, 귀납논증은 구체적 사실에서 보편적 결론을 개연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연역논증의 대표적 사례는 ‘대전제: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전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결론: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이고, 귀납논증의 대표적 사례는 ‘새인 곤줄박이는 날개가 있다. 새인 독수리는 날개가 있다. 새인 괭이갈매기는 날개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새는 날개가 있다.’입니다.

보고 들을 때는 그럴듯하다가도, 실제 논증을 구사하려고 할 때는 의외로 잘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연역논증이나 귀납논증의 틀은 정형화되어 고정되어 있고 무엇보다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연역논증 사례에서 소크라테스가 죽는다는 결론 외에 어떤 결론이 더 가능할까요. 제자인 플라톤, 제자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만 어김없이 죽어갈 뿐,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결론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귀납논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사례로부터 새로운 일반적 명제를 도출한다는 귀납은, 하나의 문제 사안에 특정한 주장과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현실 논증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모든 새는 날개가 있다.’는 내용이 도출된다 한들, 그것이 과연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이 문제’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현실에서는 연역논증이나 귀납논증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특정한 문제에 대응해서 주장이나 결론을 내리고자 하고, 이는 잠정적 해법을 세우고 자료를 찾아가며 생각을 조립해나가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실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쓰이는 법적 논증은 연역’과 ‘귀납’의 틀로는 온전히 품을 수 없습니다. 법적 논증은 앞서 제시한 각 질문에 대해 연역이나 귀납에 구애받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 타당한지에 대한 답을, 그 답의 올바름을 뒷받침하는 이유와 근거를 찾아가며 좇아갑니다. 수학적·과학적으로 합리성을 증명하고자 하지 않고, 대신 당사자가 제시하거나 판사가 발견한 논거들이 다양하게 서로 엇갈리거나 마주쳐 결합하는 방식으로 일정한 결론을 지지하며 그 결론에 ‘믿을 만한 힘’을 실어주고자 합니다. 이상적인 논리 체계에서 말하는 필연적이거나 보편적인 확실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것이 일단 옳다.’는 구체적·일시적·잠정적인 합당한 판단을 추구합니다.

양측 당사자 사이에서, 당사자와 판사 사이에서, 판사들 사이에서, 하급심과 상급심 사이에서 각자가 엮은 법적 논증은 여러 양태를 띠며 서로 대립하고 부합합니다. 다툼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둔 법적 논증은, 그만큼 유동적이고 역동적입니다. 자신의 결론을 지지하는 법적 논증을 강고히 하고자 함은 역설적으로 언제든 폐기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법적 논증과 일반 논증을 완전히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법적 논증은 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법규범 의존성’이 가져다주는 법적 논증의 차별성이 아마도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여겨질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법을 익힌 사람들에게는 ‘옳으므로 옳다.’보다는 ‘법이 그러하므로 이러하다.’는 식의 결론이 익숙합니다. 자칫 본질에서 벗어난 듯한 인상을 줄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 논증도 일반 논증과 마찬가지로 ‘논리적 오류를 배제하고, 사안과 관련되고 충분한 논거를 통해 수용 가능한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인 것은 분명합니다. 좋은 법적 논증은 우선 좋은 일반 논증이어야 합니다. 수준 높은 논증이 서로 공방하여 설득력 있는 결론이 도출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좋은 재판’, ‘정의로운 판결’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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