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6-상생 대타협의 위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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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6-상생 대타협의 위법성
  • 손호영
  • 승인 2022.11.2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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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대형 종합병원 근처에는 약국들이 즐비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모든 약국의 사정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 병원 근처에 위치한 약국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병원 근처에 있기는 하지만 병원 주변의 도로, 학교, 관사, 주차장 등으로 인해 걸어가기에는 좀 먼 약국(‘문전약국’), 또 다른 하나는 병원 근처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약국입니다.

병원과 지하철역은 조금 거리가 있어서, 병원에서는 지하철역~병원 사이의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하철역 근처 약국은 고객(환자) 입장에서 들르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셔틀버스 타고 내리면 곧 약국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전약국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애매한 거리 덕분에 걸어오기에는 머니, 지하철역 약국에 고객을 모두 뺏길 입장입니다. 꾀를 낼 차례입니다.

문전약국은 자신들 약국에 들를 수 있도록 차량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앞 풍경이 그려지실까요? 자신의 차량에 태우기 위해 시작된 고객 유치행위는, 환자에 대한 강요, 다른 약국에 대한 폭언까지 이어집니다. 여러 약국차량이 주차된 탓에 혼잡한데다, 불편한 호객행위는 병원은 물론 약국 자신들에게도 부담입니다.

문전약국 하나가 폐업하기까지 했던 상황에서 민원이 빗발치니, 문전약국 개설자들은 서로 잠정적인 동맹을 맺습니다. 어쩌면 상생을 위한 대타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우미를 공동으로 고용해, 약국 안내를 하자.’ 구체적인 업무처리 방식은 이렇습니다. ① 고객을 우선 동네약국 방문을 원하는 사람과 문전약국 방문을 원하는 사람으로 구분한다(“약국 가십니까?”). ② 문전약국 방문을 원하는 사람들 중 약국을 지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한다(“약국 지정하셨습니까?”, “다니시던 약국 있으십니까?”). ③ 후자를 ‘정해진 순번’으로 안내합니다(“근처 약국을 안내해 드릴까요?”).

언뜻 보기에 이제 질서를 찾겠구나 싶지만, 고객 유치에 강점을 가졌던 약국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도 있습니다. 이후 일부 약국 직원이 공동도우미 업무를 방해하고 자신의 약국으로 유치하려 하기도 해서 협박죄로 약식명령을 받기도 하는 등 여전히 잡음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일부 약국직원이 공동도우미가 호객행위를 한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것을 계기로, 드디어 이 판을 정리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나섭니다.

생활 속에서 으레 볼 수 있는 경쟁-타협-불화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율의 영역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손에 들어왔으니, 법적 재단이 필수입니다. 수사기관은 약사법을 들여다봅니다. 약사법과 시행규칙에서는 “의약품 도매상 또는 약국 등의 개설자는 현상품·사은품 등 경품류를 제공하거나 소비자·환자 등을 유치하기 위하여 호객행위를 하는 등의 부당한 방법이나 실제로 구입한 가격 미만으로 의약품을 판매하여 의약품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거나 소비자를 유인하지 마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에게 이 조항을 말하며 죄를 물을 수 있을까요?

1심에서는 간단하고 명료하게 판단합니다. 공동도우미 고용했다? 순번에 따라 환자들을 안내했다? 이것은 불특정 다수 환자의 약국 선택에 영향을 주는 행위이므로, 호객행위를 한 것입니다. 명확한 법 위반입니다. 하지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도입한 도우미 제도로 민원이 줄어들었던 점 등 고려해서, 벌금 50만 원의 선고를 유예합니다.

그런데 2심에서 뒤집힙니다. 불특정 다수의 자유로운 약국 선택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은 인정. 하지만 공동도우미 제도는 자정노력의 일환이었고, 이 제도에 모두 찬동했다. ‘의약품 판매질서의 확립과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공동도우미는 안내에 그친 것이므로 그들 자신이 호객행위를 한다고 인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객들 입장에서도 실제로 문전약국 중 한 곳을 방문할 의사가 있었을 수 있으니, 선택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된 것은 아니다. 이런 논리로 2심은 피고인들이 무죄라 합니다.

3심(대법원 2020도18062 판결)입니다. 3심은 안내 행위가 호객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을 피고인들이 인식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문전약국은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 담합해서 실질적 ‘공동 호객행위’를 한 것이라 본 것입니다. 환자들이 다른 약국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무상으로 차량을 제공하는 방식은 약국 선택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으니, 다른 약국에 대한 시장질서가 침해될 가능성도 높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합니다.

자정작용의 필요성을 외면하기는 어렵습니다. 2심이 주목했던 것도 이 때문이고, 1심의 양형도 이 때문이지 않았을까요. 다만 그 방식이 적법해야 합니다. 그 적법한 길을 안내하는 것이 바로 법률가의 할 일입니다. 과연 문전약국에게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요? 사익과 공익의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생각해볼 만한 문제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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