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수능 단상(秀能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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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능 단상(秀能 斷想)
  • 김용욱
  • 승인 2022.11.17 17: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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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필자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은 대한민국의 입시가 전 세계에 드문 지옥의 문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아직은 이웃 동네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를 때이다. 그나마 일본의 본고사 문제가 “무섭다”는 이야기 정도를 들었다. 명문대 본고사 문제가 일본 대학 본고사 문제의 번역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존심 상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비교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일본은 각 대학이 자율권을 행사하여 이런 「고급」 문제로 인재를 선발한다고 경탄했는데, 그래서 본고사로 회귀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 자리를 인도와 중국이 이어받았다.

요즘 우리는 연 1,000만 명이 치른다는 중국의 가오카오가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인도의 JEE(Joint Entrance Examination·IIT의 입학시험)이 얼마나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는지 듣고 있다. 저신뢰 사회에서는 대학 입학 시험이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이기 때문에 대학 입학시험 결과를 가장 신뢰 있는 지표로 본다. 인도에서 JEE 성적을 박사과정 입학까지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학부 과정의 평정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도 대입 시험의 극강 난이도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의 평정 시스템이 사람을 걸러내는 기능에 충실하기 위함일 것이다.

수천 대 일을 자랑하는 영화 주연배우 오디션이나 아나운서 시험에서도 비슷하다. 끝없이 탈락시켜도 지원자는 다시 끝없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수험생이 약간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난이도에서 평가가 용이하다. 그런데, 일정한 한계선을 넘은 복잡한 수학, 과학 문제를 단시간 내에 풀어내야 한다면 창의적 아이디어는 죽어버리고, 반복 훈련의 역할이 다시 커진다. 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일정한 온도, 습도 등이 필요하듯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려면 적절한 난이도와 여유 공간이 필요한데 조잡하고 복잡한 계산과 공식의 조합은 다른 사고가 들어갈 여지를 줄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철학 문제의 형이상학적 질문에 우리 사회는 부러운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꿈은 필요한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이런 멋진 문제를 놓고 4시간 가까이 작성하게 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우리도 그런 근사한 시험제도를 가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것은 대학별 본고사에 대한 향수의 또 다른 복사판이다.

그런데, 프랑스 바칼로레아식의 형이상학적 철학 과제는 줄 세우기를 위한 시험이 되기는 어렵다. 평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철학적 논증에 수학, 공학 과제처럼 0점과 100점을 부여하는 방식의 평정은 독선으로 빠질 위험이 크고 시험의 타당성, 공정성이 모두 지켜지기 어렵다. 프랑스도 바칼로레아 시험의 변별은 매우 낮은 편이다. 많은 국내의 공공기관에서는 근 20여 년간 내부적으로 논술 시험을 승진 평가에 활용하고 있지만, 20점 만점에 대부분 19점을 부여하고 간혹 18점 내지 20점 평정을 주는 방식으로 변별력을 극소화하는 것도 같은 연유다.

그런데 그런 시험을 전국의 고교 졸업자가 4시간씩 치르고 그것을 평정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연간 3,000억 원 정도 비용이 든다는데 말이다. 왜 프랑스인은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을 치러야 할까? 바칼로레아 시험이 묻지 않은 논제이다. 프랑스 고교 졸업자들은 무슨 답변을 할까? 우리 사회 역시 바칼로레아 등을 참고하여 오랜 시간 「논술」이란 평정 방식을 써오고 있다. 한때는 인문학 열풍과 더불어 논술이라는 평가도구에 대해서 과대평가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서서히 논술이라는 평가도구의 가치와 효용성에 대하여 적정한 자리매김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평가 시스템은 어떻게 방향을 잡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불수능에서는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과 평정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전체 학생들의 평정에도 적합한 것인지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1997년도 불수능이나 1991년도 학력고사가 평가에 적정했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교육 유발이라는 비난도 쉽게 자초하게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쉽고 패턴화된 과제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단순 암기와 반복 훈련에 의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면접도 구조화된 면접으로 다소 까다로운 과제와 질문이 장시간 행해지게 되면, 이미지와 스피치의 영역은 줄어든다. 면접관에게는 지원자를 평정할 수 있는 보다 많은 데이터와 도구를 주기 때문이다. 반면 면접 시간이 지나치게 짧고, 비구조화된 상태에서 평이하게 진행되면 이미지와 스피치의 영역이 커지게 된다. 합격하려면 예쁘고 잘 생기고 목소리 좋고 말을 잘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스피치 영역의 금과옥조에는 “메라비언의 법칙”이 있다. 상대방에 대한 인상이나 호감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목소리는 38%, 보디랭귀지는 55%의 영향을 미치는 반면, 말하는 내용은 겨우 7%만 작용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면접과정이 그 사람의 목소리와 보디랭귀지 등 이미지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면 그 면접 평정은 부적절한 것이다. 그런데, 면접 프로세스를 잘못 설계하면, 메라비언 법칙이 ‘실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22.11.17.은 수능 시험이 있는 날이다. 지금은 학부모들도 수능에 대해 아련한 추억과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세대이다. 수능 직후에만 느낄 수 있는 교도소를 탈출한 죄수의 해방감을 부모 세대들도 오래전에 경험했다. 그때는 앞으로 수능 같은 입시지옥은 없어질 거라 상상했겠지만, 30~40년 전과 마찬가지로 2022년에도 수능은 한 개인이 성인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로 자리매김해있다. 그 어두운 굴을 지나고 나면 밝은 빛이 비치기를 바라고, 어쨌든 거쳐야 할 그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

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citiz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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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v 2022-11-22 03:52:20
修學能力
수학능력
修 닦을 수 學 배울 학 能 능할 능 力 힘 력(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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