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5-위약금과 위약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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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5-위약금과 위약벌
  • 손호영
  • 승인 2022.11.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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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두 사람이 공동사업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스포츠센터를 공짜로 제공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골프 연습장을 설치해서 10년간 운영합니다. 수익이 나면 둘이 똑같이 나눕니다. 심플합니다. 혹시 서로 변심할 것에 대비해 조항을 둘 둡니다.

제10조. “본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회사가 계약 해지를 당한 경우에는 손해액을 손해배상금으로 상대방 회사에 현금으로만 지급하여야 한다.” 제11조. “손해배상금과는 별도로 의무사항에 대하여 불이행 시 별도의 1,000,000,000원을 의무 불이행한 쪽에서 지불하여야 한다.”

골프 연습장을 설치하려는 사람이 한참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장소를 제공하는 사람이 말을 바꿉니다. 운영주체, 운영기간 등 계약 내용을 바꾸자는 겁니다. 거절당하자 공사 진행을 방해합니다. 골프 연습장을 설치하려던 사람이 안되겠다 싶어 공동사업계약을 해지하고 위약금 10억 원을 내놓으라 합니다.

‘해지의 적법성’이 우선 문제되는데, 공사 방해는 계약 불이행의 주된 귀책사유라 볼 것이니, 인정하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이제 문제는 ‘위약금 10억 원’을 모두 지불하게 할 것이냐입니다.

법에서는 위약금을 손해배상액 예정으로 추정하고(민법 제398조 제4항), 이 경우에는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398조 제2항). 하지만 제11조가 만약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것이 아니라 위약벌로 규정된 것이라면? 종래 대법원은 위약벌을 감액할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해지를 당한 사람이 다툴 쟁점이 나왔습니다. 첫째, 제11조는 위약벌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고, 둘째, 위약벌이라 하더라도 감액할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위약금 약정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는, 계약서 등 처분문서의 내용과 계약의 체결 경위, 당사자가 위약금을 약정한 주된 목적 등을 종합하여 구체적인 사건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할 의사해석의 문제입니다. 위약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당사자 사이의 위약금 약정이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이나 전보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 특히 하나의 계약에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에 관하여 손해배상예정에 관한 조항이 따로 있다거나 실손해의 배상을 전제로 하는 조항이 있고 그와 별도로 위약금 조항을 두고 있어서 그 위약금 조항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하게 되면 이중배상이 이루어지는 등의 사정이 있을 때에는 그 위약금은 위약벌로 보아야 합니다.

이 사건의 제10조, 제11조를 보면 ‘위약금’을 ‘손해배상금’과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이 위약금을 손해배상 예정으로 본다면, 순수 손해액에 위약금까지 이중 배상을 지급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배상관계를 간편하게 처리하려는 것이 아니고, 계약당사자로 하여금 의무를 준수하게 하려는 위약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위약벌은 감액 가능할까요? 종래 대법원 기조대로라면 불가능합니다. 이번 다수의견도 마찬가지였습니다(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다만 반대의견이 거세었습니다. 한번 살펴봅니다.

반대의견은, 위약금/위약벌의 이분법적 구분에 따라 감액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위약벌의 감액은 불가능한데, 민법 제103조에 위반하여 무효가 될 수는 있다는 기존 판례의 법리는 ‘먼 길을 돌아가는 불필요한 우회로’입니다. 굳이 감액/효력 통제라는 각기 다른 통로를 통과하게 하는 것보다는 위약벌도 감액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공평한 결론’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민법 제298조 제2항의 유추적용이 위법한 것도 아닙니다. 위약벌의 감액 여부에 대해 법이 명확하게 정하지 않으니, 법원이 법률해석으로 결정하면 됩니다. 위약벌이나 손해배상액 예정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계약을 위반하는 경우를 대비하는 약정으로서 ‘위약금’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도 만만치 않게 다시 반박합니다. 무엇보다 판례가 쌓아올린 법질서에 우리가 순응하고 적응했다는 것이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즉, “위약금 약정에 대한 거래실무도 변화하고 있다...최근 거래실무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관한 약정과 별도로 명시적인 표현으로 구분되는 위약벌 조항을 둠으로써 당사자들이 거래 시부터 계약이행의 확보와 추가적인 금전지급이라는 심리적 강제를 통하여 분쟁을 막고자 하는 자신의 효과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법률관계에서 ‘계약의 이행확보’를 강조하는 위약벌에 관한 판례를 신뢰하고 ‘위약벌’ 약정을 함으로써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 실현을 돕는 것이야말로 법원의 올바른 태도이다.”라고 합니다.

간단한 계약과 명료한 조항. 하지만 그 계약의 해석을 놓고 분쟁이 발생하고, 여전히 논의할 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깊이 있는 논의를 볼 수 있는 좋은 교재이기도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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