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25)-‘더듬더듬 나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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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25)-‘더듬더듬 나아가며’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2.10.31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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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더듬더듬 나아가며>

이신영

금번 기회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제 얘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이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다른 분들이 쓰신 마중물 에세이들을 빠짐없이 읽어보았습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도 다른 분들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써보려 합니다.

“5년간”의 잔인함

저는 첫 시험을 앞둔 10월 디스크 두 개가 찢어졌습니다. 재시 때도 전에 찢어진 두 개의 디스크가 똑같이 찢어졌고 디스크 탈출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탈을 한 이유는 디스크 탈출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탈을 한 이유는 단순히 말하면 디스크 탈출증이 더 악화할 거란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더 악화하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공부하는 내내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본다면 “5년간” 5회 응시 제한은 참 잔인한 제도입니다. 시험을 보다가 허리를 재활할 시기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5년간 5회만 응시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이 제도는 사람의 인생을 시험에 묶어 놓습니다. 석사학위 취득으로부터 5년이 지나면 다시는 응시할 수 없기 때문에 5년간은 무슨 일이 있든 시험에 매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뜻밖의 사건이 생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얼마나 예외적인 상황이 생기든 얼마나 힘든 일이 생기든 상관없습니다. 시험을 그만두지도 그렇다고 부모님의 병간호 걱정을, 경제적 걱정을 그만두지도 못한 채로 5년간 시험을 칩니다.

만약 5년 제한이 없었다면, 재활을 몇 년 한 후 시험을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지 가끔 생각해봅니다.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부모님의 병구완을 하면서 시험을 보다가 오탈한 또 다른 친구도 생각해봅니다. 집안이 어려워서 취직을 하고 공부했음에도 오탈한 친구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병구완을 끝내고 시험을 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회사에 들어가 시험에 필요한 금액을 마련하고 시험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친구들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지를 감히 상상해봅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뻔뻔하게

오탈 후 몇 년의 휴식과 재활을 통해 간신히 허리를 곧게 펼 수 있게 되었고 또 다리를 절지 않고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몇 년간 감사함을 깨닫고 또 인생에 실망하기를 연속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는 데서 감사함을, 허리가 나아지는 속도가 더디다는 데서 갑갑함을 번갈아 가며 느꼈습니다. 인생을 더듬더듬 더듬어가며 나아간다는 답답함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더듬더듬 인생에 가끔 슬픈 일이 찾아옵니다. 면접에서 “아, 그럼 다섯 번이나 떨어지신 겁니까?”라는 말이 특별히 신경이 쓰이는 날입니다. 취직 준비를 하다 보면 면접에서 변호사 시험을 공부한 기간을 설명하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 기간이 공백기로 느껴지니 당연히 확인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오탈 하신 거냐는 물음에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히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사람이다 보니 타인 한, 두 명만 나를 그렇게 바라봐도 나의 인생을 부정적으로 반추하기 쉽습니다. 이런 날은 여태껏 더듬대며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사실은 한발도 앞으로 못 디딘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감정이 솟고는 했습니다.

이럴 때는 나는 현재 직업 전환 중이다, 이제 평생 한가지 직업만 가지는 시대는 지났지 않은가 라고 뻔뻔하게 스스로 대답해주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법학은 20대 초반의 내가 더 공부해보고 싶다고 결정한 일입니다. 지금은 더 성숙해진 30대의 시선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세상에 중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더듬더듬 짚어가지만, 더 성숙해진 시각으로 마음속을 짚어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듬더듬

로스쿨에 다닐 때는 시간이 정신없이 갔는데 이렇게 제 현재는 아주 더딥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더듬더듬 더듬어가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주파한 로스쿨의 결과가 좋았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듬더듬 나아가보려 합니다. 속도가 빠르든 더디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어떤 속도로 나아가든 제 인생을 소중히 꾸려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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