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바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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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바우 이야기
  • 송기춘
  • 승인 2022.10.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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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내 고향은 전라북도 임실의 어느 산골 마을이다. 어릴 적에는 마을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 나와 평지라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대처(전주)에 나갔다. 오가는 길에는 효자문이 둘이나 있는 효촌과 문바우라는 곳을 지났다. 문바우는 대문바위(門巖)라는 뜻이니 고향마을에 들어서는 대문 역할을 했다. 그 부근에는 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 문바우 부근에 뚝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면서 문바우는 물에 잠기고 느티나무는 베어 사라졌다. 문바우 옆에는 댐의 수문이 생겼으니, 그곳은 대문이 아니더라도 문이 있어야 할 자리였던 듯하다.

오래전에 출간된 이태, 『남부군』이라는 책에도 고향마을 앞산이 빨치산이 이동할 때 지나던 곳으로 등장하는 걸 보면, 이 지역은 산도 깊고 좌우의 이념적 갈등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1948년 2월에는 면 소재지에 있는 경찰 성수지서(支署)가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 7명과 경찰 2명이 사망하였고, 이후 경찰이 주민 287명을 연행하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3월 19일 지서에 예비 검속되어 구금되어 있던 주민 수십 명이 문바우 부근에서 학살당하였다. 임실군지(郡誌)는 이 지역 부근에서 빨치산과 전투를 치른 어느 부대가 성수를 지나면서 지서에 구금된 주민들을 끌고 가 이들을 살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희생자 수는, 증언에 따라 40여명에서 72명에 이른다. 이 사건 말고도 좌우의 대립 속에 돌아가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 어떤 내력을 가진 분일지는 모르지만, 어릴 적 마을 어느 골짜기에도 백골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확인할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이러한 대립이나 충돌이 거창하게 이념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큰 틀에서 이념이나 해방 후 만들고자 하는 새 세상에 대한 비전에 차이가 있기도 했지만,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앙심이나 원한 또는 적개심 등이 구금이나 심지어 살인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니 모나지 않아야 액운을 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라면서 어르신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이야기가 ‘남의 원한 살 일 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물론 적대적이었던 이들과 과도하게 원만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일이 오히려 더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도 생겼지만,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내신 분들이 목숨을 걸고 터득한 지혜였을지 모른다.

올해 초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정부 수립의 초기 단계에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인하여, 1948년 10월 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순천지역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무력 충돌 및 이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에 대한 조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조사활동과 맥을 같이 하겠지만, 며칠 전 인터넷 기사에서 고향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을 접하고 이러한 아픈 역사가 내 몸에도 깊이 배어 있음을 체감하였다. 이제야 방송에 한 맺힌 이야기를 하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리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었다 하여 그 시절의 일이 이제는 이념의 어느 쪽만이 옳았고 다른 쪽이 잘못이었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또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고 그 위에서 용서와 화해를 통하여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서로 다름에 대한 관용을 통한 공존의 추구가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의 일을 목격한 문바우가 물에 잠겼어도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래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나 여수·순천 10·19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필자가 일하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등의 활동도 헌법정신의 구현을 위한 것이다.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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