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2-주거침입의 법리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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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2-주거침입의 법리 발전
  • 손호영
  • 승인 2022.10.2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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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A는 어떤 여성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들어가 1층 계단을 오르는 것을 뒤따라가 갑자기 교복 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추행했습니다. B는 상가 1층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어떤 여성의 뒤에서 갑자기 교복 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추행했습니다. C는 아파트 1층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어떤 여성의 뒤에서 갑자기 교복 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추행했습니다.

A, B, C는 모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강제추행)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결론은 어떨까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주거침입강제추행)은 주거침입/건조물침입과 강제추행죄의 결합이므로, 위 죄가 성립하려면 우선 그에게 주거침입죄/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하여야 합니다.

A, B, C에게 주거침입/건조물침입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간단한 사안이고, 오래된 판례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쉽게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건조물에 강제추행 등 범죄의 목적으로 들어간 경우에는 건조물침입죄가 성립된다(대법원 2006도7079호 등 참조).”는 법리는 익숙합니다. 이 법리에 따른다면 A, B, C는 모두 유죄입니다. 2심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아니라고 합니다(2022도3801호). A, C는 몰라도 B는 건조물침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주거침입/건조물침입의 법리는 발전되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지난 칼럼 ‘주거침입죄 고찰’에서도 다루었으나 오늘 조금 더 논의를 따라가보고자 합니다.

대법원은 최근 주거침입죄에 관한 일련의 판결을 해왔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도 그 흐름의 단서를 판결에 적어놓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괄호 안에 참조판례를 적는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이를 알아채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참조판례로 적은 판결은 2021. 9. 9. 선고된 2020도12630호, 2022. 1. 27. 선고된 2021도15507호, 2022. 3. 4. 선고된 2017도18272호입니다.

2020도12630호는 주거침입죄에서 ‘침입’의 판단 기준을 새롭게 제시한 중요 판결입니다.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침입’을 ‘주거의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고, 그 판단기준으로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모습’을 제시했습니다. 즉,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거주자의 주관적 사정’은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인지를 평가할 때 고려할 하나의 요소로 지위를 변경(격하)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종래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의 승낙에 따라 주거에 출입한 것이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사정만으로 다른 거주자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해치는 결과가 된다는 전제에서, 공동거주자 중 주거 내에 현재하는 거주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주거에 출입하였는데도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는 사정만으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취지로 판단한 판결’은 모두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배우자 있는 사람과의 혼외 성관계 목적으로 다른 배우자가 부재중인 주거에 출입’한 것이 주거침입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이 판결은 심지어 피고인이 1심에서 주거침입 사실을 자백하고, 2심에서 양형부당만 다투었는데,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할 정도로, 법리적으로 의미 있었던 건입니다).

2022. 1. 27. 선고된 2021도15507호에서는 ‘거주자가 아닌 외부인이 공동주택의 공용 부분에 출입한 것이 공동주택 거주자들에 대한 주거침입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에서, 주거침입의 ‘침입’을 판단하는 기준을, ‘그 공용 부분이 일반 공중에 출입이 허용된 공간이 아니고 주거로 사용되는 각 가구 또는 세대의 전용 부분에 필수적으로 부속하는 부분으로서 거주자들 또는 관리자에 의하여 외부인의 출입에 대한 통제·관리가 예정되어 있어 거주자들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인지, 공동주택의 거주자들이나 관리자가 평소 외부인이 그곳에 출입하는 것을 통제·관리하였는지 등의 사정과 외부인의 출입 목적 및 경위, 출입의 태양과 출입한 시간 등’으로 구체화했습니다.

2022. 3. 24. 선고된 2017도18272호는 앞선 판결들의 법리에 따라 주거침입죄에서 침입에 해당하는지의 판단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지가 아니라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태양에 비추어 주거의 사실상 평온상태가 침해되었는지를 핵심 표지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고, 이번 2022도3801호 판결도 그 흐름을 잇고 있습니다.

B에게 범죄 등을 목적으로 한 출입이라고 인정할 수 있더라도, 당시 B는 야간에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는 상가 건물 1층의 열려진 출입문을 통해 통상적 출입방법으로 들어갔습니다. CCTV가 설치되었더라도 이것은 일반적 관리를 위한 것이지 외부인 출입을 통제·감시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B에게 ‘건조물 침입’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판결의 결론입니다.

대법원에서 변화·발전시키는 법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향후 법조실무의 방향성이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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