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0-논리의 극단적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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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0-논리의 극단적 적용
  • 손호영
  • 승인 2022.10.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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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쓴 서은국 교수는 진화심리학에 기초해 행복의 정체를 탐구합니다. 그가 보기에 행복은 생각이 아니라 경험이므로, “부정적 사고방식을 버려라.”와 같은 명령형 명제는 행복 획득에 소용이 없습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언제 행복감을 경험하는지?”가 핵심입니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다면, 행복감이 느껴지는 때는 ‘생존’과 깊이 연관이 있지 않을까. 행복이란 ‘생존의 도구(인센티브)’는 아닐까. 그의 논의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생존을 위한 행동을 하면 인간은 행복해진다.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인간은 생존을 위한 행동을 하게 된다. 행복감은 금방 잊히므로, 생존을 위한 행동을 더욱 빈번하게 할 필요가 있다. 조사 결과 한국인이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이다. 먹는 것과 대화하는 것.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주 맛있는 식사를 하면 된다.”

지난 ‘칼럼27-행복하려면’에서도 다룬 그의 행복론입니다. 서은국 교수가 사법연수원에 와서 강의할 기회가 있어 듣고 온 다음, 그의 통찰에 감명을 받아 점심시간에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잠잠히 듣던 옆 판사님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진화심리학이라는 것은 그 전제가 결국 인간을 동물로 본다는 것 같다. 극단적으로 그 논리를 계속 밀고 나가면 인간이 가장 희열을 느끼는 것은 ‘부부관계’라는 뜻이 될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다른 고상한 것에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가?” 그렇다, 아니다, 고상하다, 고상하지 않다, 진화심리학이란 무엇이지? 행복이란? 인간이란? 갑론을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옆 판사님이 의문을 제기한 방식은 판사들에게는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그래, 네 말이 (일단) 맞다 치자.”면서, 상대의 논리를 잠시 받아들이면서, 그 논리를 주욱 끝까지 밀고 나가봅니다. 그런 뒤 상대의 논리가 상대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의외의 결론에 다다른다는 점을 밝혀냅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는 방식으로, 상대의 논리가 가진 유용성을 허무는 데에는 효율적입니다.

고인이 된 정치인을 묘사한 역사 다큐멘터리에 대해,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제재처분이 있었습니다. 대법원(2015두49474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프로그램이 유료의 비지상파 방송매체 및 퍼블릭 액세스 전문 채널로 방영되고, 시청자가 제작한 것인 점 등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고려하여, 심사 기준을 완화해야 된다며 제재처분이 정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의 논리를 따라갈 경우, 허점이 발생함을 지적합니다.

“다수의견의 가장 큰 논거는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다수의견을 따를 경우, 선별되고 편향된 일부 자료만을 근거로 특정 역사적 인물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내용의 방송을 하더라도 ‘역사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취하기만 하면 방송법에 따라 아무런 제재조치를 할 수 없게 되는 결론에 도달한다...다수의견의 논리대로라면,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고려하라는 명분만 내세우면 이 사건 각 방송과 같이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아예 상실한 경우에도 아무런 행정제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되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여기서 반대의견이 사용한 방식이 바로 상대 논리를 극단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다수의견의 논리’를 맞다고 하면,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아예 상실한 경우에도 아무런 행정제재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치과의사가 병원에서 보톡스 시술법을 이용해 눈가와 미간 주름 치료를 했습니다. 의료법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2013도850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며, 치과의사와 의사의 면허 범위에 속하는 의료행위의 개념이나 그 구분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그를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그와 같은 논리는 그들조차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습니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의 논리...를 끝까지 관철하면, 의사와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치과대학에서 스스로 교육과정에 편입하기만 하면 치과의사는 의사의 면허 범위에 속하는 어떠한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비추어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결론은 사회통념에 비추어 보더라도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고, 다수의견조차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비판받는 입장에서는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이야기했어?”라든지,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적용하면 안 되지.”라는 식의 볼멘소리를 할 만합니다. 그만큼 이 방식은 뼈아픈 지적이 됩니다. 하지만, 결국 다수의견은 되지 못하고 반대의견 측에서 사용된 걸 보면, 판세는 뒤집지 못하는 반박방식인 것 같기도 합니다. 판결을 보다 흥미로운 논쟁 방식이라 여겨 소개해보았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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