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왜 지금도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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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왜 지금도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인가
  • 최용성
  • 승인 2022.10.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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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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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가 활동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영국은 합리주의와 과학주의, 자유주의가 꽃을 피운 서양 문명의 중심지이자 제국주의의 심장부였다. 그래서 홈즈 이야기에는 대영제국의 영화(榮華)와 서구적 근대성에 기초한 우월감, 간혹 인종주의의 흔적이 원죄(原罪)처럼 따라다닌다. 게다가 도일이 만들어낸 범죄 수법이나 추리법도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들이었지만, 과학수사가 극도로 발달한 지금 보자면 고색창연하다. 그런데도 이런 구식 이야기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셜록 홈즈는 관찰과 추리에는 천재이지만 인격은 결함투성이이다. 자기중심적이고 과시욕이 있으며 오만하고 편협하다. 게다가 코카인-담배-일 3종 중독이다. 명탐정이라지만 사건 해결에 실패하거나 무력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든 역경을 뛰어넘는 초인적이고 낭만적인 영웅 뤼팽이나, 겉으로는 평범한 척하면서도 아무리 어려운 사건도 척척 해결하는 현대 추리소설의 가짜 ‘보통 사람’ 탐정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근대가 낳은 불완전하고 결핍투성이인 편벽적 천재에게서 사람들은 입체적인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셜록 홈즈는 근대인에 그치지 않았다. 근대를 넘어서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졌다는 데에 홈즈의 진정한 매력이 있다. 당시 영국은 법치주의를 선도하는 국가였다. 법철학에서 분석법학 또는 법실증주의라고 부르는 사조가 지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홈즈는 실정법만을 따르지 않는다. 범죄자를 풀어주고, 악인을 응징하기 위하여 또는 의뢰인을 위하여 주거 침입이나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도 침묵하기도 한다. 왓슨이 “법의 수호자”라고 불렀던 홈즈는 실정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실정법을 넘어서는 법, 즉 실질적 정의의 수호자였던 것. 그래서 셜록 홈즈의 법철학은 시대를 초월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나치나 각종 독재 권력이 법실증주의를 악용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진정 셜록 홈즈는 법실증주의로 대변되던 근대를 뛰어넘는 존재였던 셈이다.

한편 전혀 다른 성격인 존 H. 왓슨이 홈즈 옆에 있다. 온후하면서도 신의가 있고 늘 한결같은 왓슨은 영국 신사의 전형과 같은 인물로 홈즈의 인격적 결핍을 채워가는 이상적인 동반자이다. 셜록 홈즈의 불완전하고 독특한 자아와 왓슨의 건전하고 정직한 상식이 서로 어우러져 난해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홈즈 이야기는 비로소 완성된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보통 사람에 의하여 비로소 천재가 되는 법. 더불어 보통 사람은 천재를 완성하는 모험을 함께 하며 지루한 일상에서 해방된다. 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멋진 인생 아닌가.

셜록 홈즈를 불멸의 존재로 만든 데에는 ‘홈지언(Holmesian)’ 또는 ‘셜로키언(Sherlockian)’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팬들의 공헌이 크다. 이들은 작가로, 영화감독으로, 비평가로, 혹은 지금 나처럼 애정을 가득 담아 셜록 홈즈를 끊임없이 세상에 알린다. 오랜 기간 마지못해 써서 그런지 시리즈 전체에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많은 것도 홈즈를 실존 인물로 보는 팬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숙적 모리아티와의 관계에서 홈즈의 유년기 심리적 외상(外傷)을 추적해가다 보면 동 시대인인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를 만난다(니콜라스 마이어의 <7퍼센트 솔루션>). 홈즈가 대영박물관에서 범죄학 연구에 몰두하던 시절은 불멸의 고전 <자본>을 쓰기 위하여 그곳을 찾은 마르크스의 시간과 겹친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와 치열하게 마주하다가 서로 대화하게 되는 두 인물을 떠올려보라(베어링굴드의 전기 <명탐정 셜록 홈즈>). 모리아티는 실은 홈즈의 은사였을지도 모른다(영화 <영 셜록 홈즈(피라미드의 공포)>. 아니, 모리아티는 홈즈가 조작한 가상 인물이거나 홈즈의 또 다른 인격일지도 모른다. 홈즈가 운명의 여인 아이린 애들러를 만나 사랑을 나누지는 않았을까, 아들도 있지 않았을까(네로 울프). 홈즈에게 첫사랑이 있지 않았을까. 동시대에 실존하였던 연쇄 살인마 난도질 잭 미제 사건도, 실은 홈즈가 해결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비밀로 남겨둔 것은 아닐까(<Murder by Decree(셜록 홈즈의 눈물)>). 상상력은 한없이 확장되어 홈즈가 드라큘라와 싸우거나, 웰즈의 <우주전쟁> 설정물에 등장하거나, 타임머신을 이용하는 장면에까지 이른다. 모두 풍부한 문화사 지식을 배경으로 깔고 진행되는 고급스러운 지적 유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 지적 놀이는 에세이, 파스티슈(pastiche)나 패러디(parody), 오마주(hommage) 등등 다양한 형태로 원작(정전, canon)을 지금 여기에 불러내면서 셜록 홈즈를 새롭게 만든다. 언뜻 보아 쓸모없는 행위 같았지만, 이것이 셜록 홈즈를 불멸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만든 원동력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니 모든 ‘쓸모없음’과 ‘헛된 놀이’,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자유로움’을 찬양하라. 이것은 우리 예술과 문화가 세계화되기를 바라기 전에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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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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