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9-오해와 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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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9-오해와 오독
  • 손호영
  • 승인 2022.10.0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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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미당 서정주는 한국어의 표현력을 끝 간 데까지 이르게 한 시인으로 평해집니다. 생애야 잠시 제쳐둔다면, 그의 시적 성취와 안목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가 김동리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김동리가 세심히 매만진 습작시를 한 편 들려줍니다.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미당이 무릎을 탁 칩니다. 멋지다. 과연. 절창이다. 칭찬을 쏟아내는데, 오히려 그럴수록 김동리가 시무룩해집니다. 어리둥절해하는 미당에게 김동리가 말합니다. “이 사람아, ‘꽃이 피면’이 아니라 ‘꼬집히면’이다.” 미당이 벙벙해하며 말합니다. “자네는 산문 쪽으로 가야겠네.” 김동리가 시인이 아니라 소설가가 된 연유라 합니다. 이후 김동리는 교과서에도 실린 무녀도, 역마, 등신불 등 소설을 씁니다.

지금까지 몇 차례 칼럼에서도 말씀드렸듯, 말하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말하는 바, 듣는 바와 쓰인 바와 읽힌 바가 일치할 때 우리는 이해했다고 하고, 불일치하면 오해라고 하거나 오독했다고 합니다. 미당은 김동리의 습작을 오해했고 속모를 칭찬을 했더니, 김동리가 시를 접고 소설을 택합니다. 오해와 오독의 효과란 이처럼 강력합니다.

미당의 감탄이 그나마 긍정적이었으니, 김동리가 시무룩해지거나 부루퉁한 데 그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상대가 오해와 오독에 기반하여 나의 주장이나 논증을 비판한다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반박해야겠죠.

동영상 공유사이트(A)에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영화나 드라마 등이 게시글로 업로드되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동영상 공유사이트의 링크를 자신이 만든 별개의 사이트(B)에서 제공합니다. 이제 B사이트에서 제목 등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검색해 링크를 누르면, 사람들은 바로 A사이트의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링크를 제공한 행위가 저작권자의 전송권 침해를 ‘방조’했다며 처벌할 수 있을지 문제됩니다.

대법원 2017도19025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링크 제공행위가 저작권자의 전송권 침해를 ‘방조’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정범이 침해 게시물을 인터넷 웹사이트 서버 등에 업로드하여 공중의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이용에 제공하면, 공중에게 침해 게시물을 실제로 송신하지 않더라도 공중송신권 침해는 기수에 이른다. 그런데 정범이 침해 게시물을 서버에서 삭제하는 등으로 게시를 철회하지 않으면 이를 공중의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이용에 제공하는 가벌적인 위법행위가 계속 반복되고 있어 공중송신권 침해의 범죄행위가 종료되지 않았으므로, 그러한 정범의 범죄행위는 방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은 ‘범죄행위가 종료되기 전’까지 행해진 행위도 방조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고 하여 정범의 실행행위 종료 이후의 행위로 인한 방조 성립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다수의견의 태도는 형법상 방조의 성립 범위를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 광범위하게 확장하는 결과를 초래...파장은 현재의 단계에서 그 범위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비판합니다.

그러자,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반대의견이 오독이라며 반박합니다. 이때, 그 반박 방법이과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이 사건은 방조 개념의 확장 문제와는 관계가 없는데도, 반대의견은 이 사건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정범의 실행행위 종료 이후의 행위에 대해서도 방조 성립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하지만, 이것도 다수의견을 오독한 것이거나 근거가 없는 비판이다. 다수의견은 정범의 범죄행위의 종료 후에도 방조범이 성립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없다...다수의견이 사용한 ‘범죄행위의 종료’라는 표현은 대법원 판례에서 말하는 ‘범죄 종료’와 같은 뜻이다.”

‘전혀 다른 맥락’으로 파악하고 있다거나, ‘오독한 것’이라거나, ‘근거가 없는 비판’이라는 강도 높은 반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판결에서 이처럼 격론이 드러나니 한번 더 눈길이 갑니다. 이런 반박을 받으면, 상대도 가만히 있기 힘들지 않을까요.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나섭니다. “다수의견이 설정한 방조의 개념으로 인해 정범의 실행행위로 인한 ‘결과 발생 시’까지 방조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반대의견은 이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반대의견이 다수의견을 오독하였다거나 근거가 없는 비판을 하고 있다는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의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오해와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법률서면에서는 우선 상대의 주장을 내가 어떻게 이해했는지 정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1. 원고의 주장 요지”라든지, “1. 피고의 주장 요지”라든지 하는 식으로, 내가 이해한 상대의 주장을 요연하게 정리하여, 서로 같은 논박의 쟁점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효율적이어서, 재판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재판부도 서로 논쟁의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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