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21)-‘실패가 경험이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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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21)-‘실패가 경험이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2.09.30 15: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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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실패가 경험이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이새봄(필명)

올림픽이나 프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은 스포츠 기사에 눈길이 갈 때가 있다. 어떤 팀의 우승, 누군가의 1위 혹은 신기록 달성 소식은 굵은 고딕체로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런 기사를 읽어도 정작 기사에 나온 우승한 선수 대신 우승은커녕 결승, 준결승에도 오르지 못한 채 잊혀져 버린 수많은 선수들의 존재에 더 신경이 쓰인다. 박수 받지 못한 채, 실패라는 결과를 오롯이 끌어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그들이 곧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난 이제 출전 기회를 잃었다. 내 머리와 몸, 근육이 노쇠하여 경기를 뛸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 시험이라는 경기에는 더 이상 출전할 수 없다. 이미 여러 번 기회를 주었는데 그동안 무엇을 했냐는 물음에 나도 할 말은 없다. 구구한 사연을 밝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완벽하게 패했고 이제 어디를 향해 무엇을 향해 뛰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수험생이라는 이름이 너무 힘겨웠는지,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증상들로 찾았던 병원에서 의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험에 불합격해도 세상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그렇게 되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아요. 그래서 무서워요.” 어리석게도 나는 그렇게, 잔뜩 겁에 질린 채 공부하고 시험 보느라, 아니면 그저 시험의 공포 속에서 나 스스로 만든 부정적인 감정들과 싸우느라 정작 시험 그 자체와는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건 아닐까 싶다.

이제 시험은 끝났고, 나는 합격하지 못했고, 의사의 말처럼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로스쿨에 입학할 무렵 TV 예능에서 보았던 아이들은 청소년으로 훌쩍 자랐고, 함께 공부했던 이들은 개업을 하여 자기 영역을 닦아가고 있다. 시간은 늘 그래왔듯 얄미울 만큼 정직하게 꼬박꼬박 제 속도를 지켜 그 시절로부터 저 멀리 와버렸다. 남들은 그 시간을 성큼성큼 달려 저만치 가버렸고 나만 혼자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몹시 힘들고 불편하다.

그러나 이제 나름의 출구전략을 짜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까. 최근에 하늘의 별을 천체망원경으로 직접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문과 출신의 얕은 과학 지식으로는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붉게 타오르는 그 별이 내 눈에 보이기까지 몇만 광년을 달려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버려진 시간이라 치부하는 지난 몇 년은 이 광활한 우주, 그 긴 억겁의 시간 속에서 먼지 한 톨만큼도 안 될 것이다. 그토록 머나먼 별에서 출발한 빛이 내 눈에 닿기까지 달려온 그 길고 긴 시간을 생각하면 어차피 인간의 삶 자체는 가볍고, 가볍고, 가벼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시험이란 기회 혹은 덫에 사로잡혀 이토록 무겁게 바닥에 웅크려 살 필요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조차 변명이고 궤변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하찮은 논리라도 세워서 나를 위로하고 다독여야 한다. 끊어진 인간관계를 애써 회복할 생각도 없고, 전망이 밝아 보이는 분야를 찾아 뭔가를 이뤄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내가 수험이라는 터널을 헤매는 동안 나를 지켜준 가족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지켜야 할 가족들을 위해 오늘을 성실히 살아내려 한다. 내 발목을 잡고 한없이 깊은 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지난 시간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를 떨쳐내려 한다. 실패한 어제도 내 젊은 날의 한 페이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을 알기에 거창한 다짐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딱 한 걸음만 내디뎌 보려 한다. 그곳에서 필요한 일을 그냥 묵묵히 하면서 매일매일 오늘, 지금, 여기에 주어진 삶을 선물처럼 받아들이려 한다.

끝으로 시간의 힘을 믿으며 소망해본다.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다시금 차곡차곡 채워가다 보면 어쩌면 앞으로 10년 아니, 20년쯤 뒤에는 실패라고 이름 붙여진 나의 지난 시간들이 경험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있기를...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바래고 아물어 희미한 흉터로만 남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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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폐지 2022-10-03 10:31:32
변호사시험법상 5년간 5회 응시제한규정은 악법중의 악법입니다. 하루 빨리 폐지되어야 합니다.

평생응시금지자들의 공간이 개설되었습니다.
law5.kr

ㅇㅇ 2022-09-30 16:12:29
법조인 그런 거 하지 마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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