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8-판사의 비유
상태바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8-판사의 비유
  • 손호영
  • 승인 2022.09.30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어떤 대상을 이야기할 때, 우리에게 친숙한 것에 빗대어 설명하면 쉽습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이와 같은 비유를 ‘추상적 생각을 구체적 각본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추상’을 ‘구체’로 전환하는 힘, 그것이 비유가 가진 기능입니다.

문학은 일찌감치 비유의 힘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문학은, ‘익숙한 것’을 ‘생경하게’ 만들고자 비유를 사용하는 경지에 이르기도 합니다. 시인 김동명은 “내 마음은 호수”라고 노래합니다. 마음이야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이것을 호수로 치환합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玉)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노 저어오는 그대의 그림자를 안은 채 부서져도 좋을 만큼, 형언키 어려운 헌신적 마음을, ‘호수’로 퉁쳐버립니다. 독자들은 과연, 내 마음은 호수였구나 하고 공감합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이 스스로 “내 마음은 사막이었다.”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상황을 단박 압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고 습기도 없이 메마른 마음. 문학에서 비유는 언어를 탐스럽게 굽는 효모와 같습니다.

판결에서도 비유가 쓰입니다. 딱딱하고 건조한 판결에 비유가 쓰인다고? 빈번하지는 않지만, 종종 보이는 비유는, 사안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줍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판결에서 쓰이는 비유를 몇 가지 소개해볼까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양심’을 가려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양심이 과연...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 가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다수의견은 만약 그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종교의 교리는 무엇인지, 그는 과연 교리를 잘 따라왔는지, 신앙기간은 어떻게 되고, 활동은 어떻게 해 왔는지, 가정환경은 어떤지, 성장과정은 어떤지 그의 전반적인 삶을 조망하고자 합니다. 깊고 확고한 양심은 그의 삶 전체를 통해 형성되고 표출된다고 보기 떄문입니다.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손사래를 칩니다. ‘양심이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다.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야만 양심을 알 수 있다니, 그건 양심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취하는 신앙의 독실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그러면서 알기 쉽게 결혼 비유를 듭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하면 입영을 앞두고 내리는 최종적인 결단이 바로 그 사람의 양심에 따른 결정이다.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평소 어떠어떠한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주변에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고 해도, 결혼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구체적인 어떤 사람을 정해 결혼하기로 최종적인 결심을 하는 순간이다. 그 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과 행동을 했든 상관이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런 논리에서 보면 양심상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심사·판단 없이 이를 인정해 주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요소들을 심사·판단의 기준으로 고집하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과 같은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양심이 어떤 삶의 궤적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그런 복잡하고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먹은 그 순간 최종적인 마음의 상태가 바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결혼할 결심’에 빗댑니다. 무릎을 탁 치게 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면 비유는 성공입니다. 사실 사랑, 결혼만큼 익숙한 소재는 없습니다. 다들 겪는 것이니까요. 위 비유를 조금 더 이어나가면 이런 강력한 논리가 됩니다. ‘만약, 원래 A와 오랜 기간 교제했고 그와 결혼하기로 했었는데, 마지막 순간 B와 해로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은 그의 양심에 반하는 것인가?’ 이 비유에 대한 다수의견 측의 답변은 판결문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법조인의 신상정보를 수집한 뒤 법조인들 사이에서 개인정보와 경력이 일치하면 일정 점수를 부여하는 사이트가 있었습니다. ‘인맥지수’를 제공하는 서비스였지요. 다수의견은 위법한 서비스라고 했습니다. 법조인 간 친밀도가 재판과 수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그릇된 인식이 심화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해도와 나침반 비유를 들며, 반박합니다.

“우리나라 법률시장도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그에 관한 정보의 바다가 형성되고 있고, 그 바다를 항해하는 데에도 당연히 해도나 나침판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역시 시장 수요의 일부이다. 소비자가 어떤 지도와 나침판을 믿고 이용하느냐는 그들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법원이 나서서 그 지도와 나침판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 검열할 일은 아니다...소비자 스스로 시장에 나온 정보의 가치와 한계를 읽고 가늠하여 필요한 한도에서 이용할 안목과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적절하게 사용된 비유는 이해를 높일 뿐만 아니라 상대를 설득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소송실무는 결국 올바른 논증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비유는 상당히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쓸 만한 비유를 보거나 생각날 때, 한번 쯤 눈여겨보고 쟁여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