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6-조율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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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6-조율의 시간
  • 손호영
  • 승인 2022.09.1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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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지난 칼럼에서 다루었던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을 읽었을 때, 첫 감상은 ‘참 유별나다.’였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철학을 포장하고 덧칠한 것이 아닐까. 적어도 심히 과장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우리나라 피아노 조율명장 이종열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서는 이제 깨닫습니다.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대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삶은 일맥상통하는구나. 이 사람들은 일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이종열 명장은 고등학교 3학년때 옆 동네 예배당에서 풍금을 만났습니다. 휘둥그레진 그는 그때부터 예배당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그의 시간은 예배가 끝날 때부터 시작입니다. 새벽까지 풍금을 치고 만졌습니다. 오르간·피아노 교본, 음악통론 책을 다 떼다보니 이제 그는 집사님으로부터 풍금을 건네 받아 성가대를 발족시키는 데 이릅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명장과 성가대원은 그날을 추억합니다.

성가대 합창곡을 연주하던 그는 풍금의 소리가 균일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음은 좋고, 어떤 음은 거칩니다. 1956년, 조율이라는 단어도 모를 때입니다. ‘소리는 물체의 진동’이라는 이론에 기반하여, 진동체를 변화시키면 되겠다 싶어, 풍금 뒤 뚜껑을 열어제낍니다. 리드(reed)를 빼거나, 진동판을 깎는 식으로 제식대로 해봅니다. 하면 할수록 꼬입니다.

결국 책방에 가 ‘조율’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일본책을 구합니다. 일본말을 더듬더듬 배워가며 ‘평균율’, ‘순정율’을 처음 알게 됩니다. 명장이 풍금을 이리 저리 고치던 방식은 순정률인데, 순정률을 고집하다보면 불협화음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옥타브 열두 음이 조금씩 양보해서 1/12씩 조율하는 방식을 쓰게 되는데 이것이 ‘평균율’입니다. 명장은 평균율로 풍금을 다시 고쳐놓은 뒤 충격에 휩싸입니다. “이게 화음이라고? 이건 화음이 아니야.” 고집스럽게 화음을 추구하던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나중에는 그도 평균율에 익숙해져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명장은 피아노 공장에서 일하며 피아노 구조를 완전히 이해했고, 삼익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며 인기를 누립니다. 명장은 피아니스트들의 추천으로 세종문화회관 조율사로 일하게 되었고, 이후 예술의 전당으로 옮깁니다. 세종문화회관은 그가 떠난 이후 한달 동안 조율사를 여럿 바꾸었다고 하네요.

명장의 일화 중 가장 알려진 이야기는 지메르만(Zimmerman, 짐머만)과의 만남입니다. 지메르만은 자기 피아노를 가지고 올 정도로 섬세한 사람입니다. 그는 공연 이후 자신의 마음에 꼭 들게 조율해준 명장에게 감사하다며 관객들 앞에서 공식 인사를 합니다. 무대 뒤에 숨겨진 그가 세상 전면에 드러난 장면입니다. 그도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꼽습니다.

조지 윈스턴이 내한했을 때, 조지 윈스턴은 명장에게 건반 번호별로 요구 사항을 4장에 걸쳐 세세히 전달했다고 합니다. 명장은 슥 보더니, 딱 접습니다. “이거 필요 없어.” 그리고 자기 식대로 조율합니다. 요구대로 한다 해서 없던 기술이 바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의 끝은 다 똑같습니다. 조지 윈스턴은 피아노를 쳐보고 명장을 찾습니다. 그리고 “오 원더풀, 뷰티풀” 했다고 하네요.

그는 후배 조율사들에게 자격증을 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경계를 합니다. 기계에 의존해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사실 조율은 소리의 물리적 성질을 다루는 것이며 숫자로 표현할 수 있으니 수학적이고 기계적으로 조율이 가능하다 싶습니다. 명장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야 그런 방식이 맞을 수 있어도, 음악적으로는 불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미세한 차이를 아는 것이 도가 텄냐 안 텄냐를 가른다고 하네요.

명장은 “제대로 하려면 완전히 미쳐야 한다. 미치지 않고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직업 조율사가 되고자 한다면 최소 2,000대를 연습해야 하는데, 하루 한 대씩이면 5~6년이 걸리고 두 대씩 하면 3년이 걸리니 꾸준히 단련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쉬운 소리도 덧붙입니다. “조율을 일생동안 해야 할 학문으로 삼는다면 가끔은 나를 찾아와 경험담도 듣고 소리도 들어보고 일행이라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후배들은 부디 선배들을 자주 찾았으면 한다.” 섭섭함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던 일 그냥 하던대로 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일이 일이고 공부가 공부지 하며 별 생각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도 많습니다. 명장이나 대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부끄러워집니다. 그들은 항상 진심이고 언제나 전력입니다. 새삼 자세를 가다듬고 일상을 정돈해봅니다. 수험을 하는 여러분도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면 이번 기회에 다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더 나아지도록 노력해보고자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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