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젊은 정치인의 안타까운 죽음과 석패율제도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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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젊은 정치인의 안타까운 죽음과 석패율제도 논의
  • 신희섭
  • 승인 2022.09.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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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지인을 통해 한 ‘젊은 정치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54세의 나이와 아직 어린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는 것에 안타까웠다. 본인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처자식만 남기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는 심정이 어떨까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안타까웠다. 그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취지로 고향 포항에서 1995년 26세 최연소 나이로 포항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지역주의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신념으로 민주당 후보로 경북에서 7번 정치에 도전했고, 7번 고배를 마셨다. 2018년 포항선거 시장 선거에서는 42.4%의 기록적인 득표율을 보였고, 2020년 총선에선 30%가 넘는 득표를 했지만, 거기가 한계였다. 고향 어르신들의 “글마가 사람은 좋은디, 정당이 좀...”이란 말씀이 많은 설명을 대신할 뿐이다.

지난 8월 22일 작고한 허대만 민주당 전 경북도당 위원장 이야기다. 안타까운 마음에 고인의 이야기를 좀 더 찾아보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던 고인은 고등학교에서 악착같이 공부를 했고, 뛰어난 성적에 학교에서는 서울대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고향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서울대 정치학과로 진로를 정했고, 서울대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가게했다. 그 뒤 지역을 위한 정치의 신념과 우직한 뚝심으로 버텼다. 하지만 오랜 시간의 도전과 시련은 결국 병으로 이어져 이 우직한 젊은 정치인을 데려갔다.

만나본 적 없는 분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몇 가지 점에서 공감했다. 정당이나 이념을 떠나서 말이다. 그는 여의도 중앙 정치에서 큰 유명세가 있지는 않지만, 경북과 포항 지역에서 끊임없는 도전으로 지역민들에게 친숙한 사람이었다. 7번의 도전 동안 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고, 현실적인 타협안들도 있었을 것이다. ‘권력을 잡아야 그 뒤에 신념을 실현할 수 있다’는 주변의 조언도 있었을 것이다. ‘생활인으로서 가족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며 짓누르는 삶의 무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버텨낸 것은 정치적 신념과 개인적 뚝심과 우직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주의의 타파를 위해, 좀 더 넓게는 한국정치 구조의 개편을 위해 투지를 불사르면서 도전한 ‘정치인 허대만’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주변에서 선거제도 개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석패율제도를 도입해서 안타깝게 패한 정치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는 주장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석패율제도란 현재 일본의 중의원(일본식 하원제도)에서 사용하는 제도로 지역구에서 ‘석패’한 즉 안타깝게 패한 후보를 비례의석에서 당선시켜주는 제도다. 일본이 1996년 선거제도 개편과 함께 사용한 제도다. 한 선거구에서 복수의 당선자를 뽑던 일본은 소선거구제로 개편하면서 비례의석에 석패율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 제도는 한 정당에서 지역구 경쟁에 나간 후보들을 비례의석에 정한 순번에 특정 정원을 정하거나 권역(지역구보다 큰 선거구 개념)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 전원을 비례의원으로 중복 입후보하게 한다. 예를 들어 일본 민주당이 11명이 출마하는 지역선거에서 1번 비례의석에 2명을 공천하고 3번 비례의석에 9명을 중복해서 공천하는 경우, 1번 비례에서 공천받은 사람 2명이 지역구에서 당선이 되고 3번 비례에 공천된 후보 9명 중 5명이 당선이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1번에서 당선된 두 사람의 비례의석 몫은 후 순위로 밀린다. 또한, 3위에 5명을 제외한 4명이 석패율 경쟁으로 비례의석 공천 순위대로 당선되는 것이다. 반면 일정 수를 정하고 석패율 경쟁을 통해 그 순위만큼만 당선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석패율제도를 일본이 도입한 것은 지역구 선거에서 아깝게 떨어진 유력정치인이나 중견 정치인을 구제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들을 ‘부활당선자’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8번이나 석패율제도로 부활 당선된 의원도 있다.

그런데 석패율제도는 왜 일본만 사용할까? 석패율제도에 대해선 학문적으로 4가지 쟁점이 있다.1) 첫째, 중복입후보의 문제로 인해 공정성 문제가 있다. 둘째, 소선거구제도가 양당제를 강제하는 효과가 있으나, 석패율제도가 유권자의 사표방지 심리를 변화시켜서 거대 정당에게 유리하게 하는 기능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셋째, 석패율제도가 비례대표 정당 명부의 작성에 유권자들의 의사를 좀 더 효과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넷째, 석패율제도가 소수 정당에게 석패율제도를 활용해서 지역구에서 패배해도 비례에서 당선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정당별로 중복후보자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전원등록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고, 유권자가 분할투표를 여전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표방지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고 나온다. 그리고 정당의 개방성을 높이는 데 부분적으로 일조하고 있고, 소수정당 활성화 효과가 그리 크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한국에서 석패율에 관심이 적은 것은 학문적인 측면보다 현실 정치적 측면 때문이다. 석패율제도는 2000년 노무현 후보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출마하면서 정치적 의제가 되었다. 지난 2019년 선거제도 개편에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결국 도입은 무산되었다.

마지막에 입장을 바꾼 민주당에게는 석패율제도가 수도권에서 어렵게 승리한 민주당에게 불리하다는 점과 진보정당과의 선거 막판 단일화를 방해한다는 점이 크게 작동했다. 이외에도 비례의석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석패율제로 부활시키면 직군이나 계층을 반영하는 비례대표제 본연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점과 정당이 석패 후보를 중복 입후보할 때 중진 후보로 선택하게 되는 불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였다.

하지만 일본에서 사용하는 방식처럼 일정 조건이나 봉쇄조항을 두면 제도의 단점을 통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석패율로 당선되는 후보의 최저 득표비율을 정할 수도 있고, 지역 패권 정당이 존재하는 경우 특정 정당을 배제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정당이 민의를 반영한다면 지역주의 타파와 같은 상징적인 행동을 위해 ‘어쩌면 무모하게’ 도전한 후보를 구제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도 가능하다. 지난 2020년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만들고 위성 정당을 만들어 제도 취지를 무색하게 한 것을 감안하면, 석패율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좀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지만 안타깝게 된 후보들이 의석을 가지게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주변에는 ‘정치인 허대만’과 같은 우직한 정치인들이 있다. 흔치 않지만,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려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는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고, 구체적인 보완책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정당의 의지다. 제도 공학만을 따지지 않고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의지.

각주 1) 김용복, “일본 선거제도 개혁과 석패율제도의 효과 : 한국에의 시사점”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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