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패권국 미국의 ‘인플레감축법’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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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패권국 미국의 ‘인플레감축법’ 서명
  • 신희섭
  • 승인 2022.08.1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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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물가가 살인적이다. 얼마 전 방문한 한 식당은 5만 원대 세트 메뉴 가격을 7만 원으로 올려받았다. 브랜드 치킨 한 마리가 2만 원을 훌쩍 넘었고, 5명이 삼계탕집에 가면 10만 원은 주고 나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라는 푸념이 나올 수밖에.

유독 2022년 물가상승이 더 살인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푸틴이 시작한 전쟁 탓이다. 에너지와 식량 분야에서 공급망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물가를 수직 상승시키고 있다. 많은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오죽하면 평가절상조치를 취하는 국가도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8월 16일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인플레감축법’에 서명을 했다. 전체 규모 7400억 달러(966조 원)의 인플레감축법의 핵심 내용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 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기 위해 3천 750억 불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에너지 감축법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전에 내세우던 ‘Build Back Better 법’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것이다. 법안 수정과정에서 3조 달러를 사용하겠다던 기존 법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반영하였고, 에너지 공급 분야를 재편하여 인플레이션의 공급자 측 불안정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당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에너지 시장 교란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미국은 이 법안을 통해 ‘재생에너지 분야’를 키우면서 ‘전기차 분야’의 우위를 가지겠다는 것이다. 우선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여 미국의 산업 내 우위를 만들고자 한다. 또한,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를 미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로 국한하고, 전기차에서 사용하는 배터리의 경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된 광물을 사용한 비율에 따라 차등적으로 세액을 공제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의 목표는 명확하다. 새로운 산업 분야이자 미래 성장동력인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분야에서 미국의 지배력 확보다. 이것을 반대로 해석하면 중국의 높아진 경쟁력을 미국이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태양광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산업을 압도적인 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다. 막대한 중국의 내수시장을 통한 대량생산구조로 다른 국가들의 태양광 관련 제조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전기차 기업도 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구조적으로는 중국이 배터리 분야의 산업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인 리튬의 경우 생산은 23% 정도지만 정제는 90% 이상을 중국에서 한다. 희토류 공급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위상은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빠른 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법이 ‘중국을 때리겠다’를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지 않은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 가격이 많이 나가는 전기차 분야에서 미국 시장의 영향력을 활용해서 미국의 내수 산업을 키우고, FTA로 연결된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생에너지 분야를 육성하면, 장기적으로 탄소 중립이라는 환경 규범을 따르면서도 천연가스와 석유로 다져놓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연히 줄일 수 있다. 최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RePower EU’ 정책을 내놨다. 사용량 40%에 달하는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친환경 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도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으로 호응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50년까지 기업전력사용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2019년 12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해 탄소배출이 많은 나라의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해 자국의 친환경산업과 기업의 피해를 막겠다고 나서고 있다. 즉 미국과 유럽은 환경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면서 에너지 공급의 판을 재편하고자 한다.

이 정책이 효과를 보게 되면 유럽에 천연가스를 판매하는 러시아의 공급자로서 지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편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환경파괴와 인권유린으로 비판을 받는 희토류 채굴이나 자원 정제같이, 선진국이 회피하는 분야에서 가격경쟁력으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중국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은 태양광 산업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악용하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길핀은 패권변동은 패권 국가의 경제적 조건 악화와 도전 국가의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제적 조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특히 투자 감소와 생산 공동화를 경험하는 패권국의 약화는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체결하고 있는 일련의 법안이나 제도들은 패권 약화의 추세를 반전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친환경과 노동조건을 강조하면서 공급망의 재편을 꾀하려는 ‘인도 태평양 경제프레임(IPEF)’이나 반도체 생산국가 간 새로운 공급망구축을 노리는 ‘칩4 동맹’은 모두 미국이나 북미(NAFTA)로 기업들을 불러오거나, 미국에서 친환경 기업이나 전기차 기업을 만들어서 다시 미국의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한 것이다.

로버트 길핀이 묘사한 대로 패권국 미국이 악의적(malign)이고 비용을 다른 국가에 강제로 부담하게 하는 국가가 될지,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가 묘사한 대로 미국이 관대(benign)하고 스스로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할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비민주주의 국가면서 국제질서를 붕괴시키거나 규범을 깨는 국가들을 공급망에서 제외하고, 비용이 들어도 동맹국들과 새로운 판을 만들고자 하며 이것을 관철할 수 있는 경제력과 외교력을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패권의 쇠락과 새로운 등장이 100년을 주기로 만들어진다는 ‘장주기이론(long cycle theory)’의 주장과 달리 미국은 패권의 유지하기 위해 산업구조의 재편에 나서고 있다. 묻어갈 것인가, 함께 갈 것인가? 대중국 의존도가 높고, 화석에너지 사용 비중이 높은 한국에게는 고통스러운 질문일 수밖에 없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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