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깊어지는 미·중 대립과 ‘칩4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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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깊어지는 미·중 대립과 ‘칩4 동맹’
  • 신희섭
  • 승인 2022.08.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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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 대립은 단순히 명분을 둘러싼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첨예한 이해관계에 기반한 쟁투이면서, 미래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이다. ‘칩4 동맹’은 이런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8월 9일(미국 시각) ‘반도체지원법’에 서명하고 공표했다. 전체 2,800억 불을 투자하는 이번 법안에서는 반도체 산업에만 520억 불이 지원된다. 게다가 이 법에는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유인책도 포함하고 있다. 지난 7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미국 의회는 이런 지원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 대한 신규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중국에 거대한 공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양날을 검을 받은 셈이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 3월부터 ‘칩4 동맹’으로 구체화했다. 한 국가가 전 공정을 모두 만들 수 없는 반도체 특성상 설계와 장비는 미국이 대고, 일본은 소재와 장비를 제공하며 한국과 대만이 생산과 제조를 담당한다. 이 4개 국가가 전세계 반도체의 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들만으로 공급망의 안정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2021년 반도체 부족 문제를 경험한 미국 입장에서 반도체 공급의 불안정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첫 번째 표면적인 이유이다. 한편 ‘2025년까지 반도체 굴기’를 실현하겠다는 중국의 빠른 양적 성장세를 막아보겠다는 것도 표면상 또 다른 이유다. 물론 중국의 기술 수준으로 인해 현재도 견제할 수 있는데 굳이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있는지 하는 반론 하나와 중국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그리고 반도체 관련 하이엔드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 반도체 시장 전체가 공급과잉에 빠지고, 이는 미국의 애플과 같은 기업들에 엄청난 피해를 줄 것인데 과연 미국 정부가 자충수가 둘 수 있을지 하는 반론들도 있다.

표면적 이유보다 ‘칩4 동맹’은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 크게 3가지 입장이 있다. 첫 번째는 반도체라는 것이 첨단산업의 핵심 부품이라는 점에 더해, 군사안보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를 통제해 중국의 군사력 성장을 장기적으로 제한하면서 군사력 격차를 강화하기 위해 핵심 목줄을 쥐겠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대만은 완전히 미국 편이고 대중국 무역이 크지 않기 때문에 미-일-대만의 공급망을 통해 향후 중국의 성장을 견제한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데다 설계와 장비 대부분을 미국이 통제하기 때문에 미국의 공급 없이는 반도체 속도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제조업강화, 군사 강국화, 우주 분야와 같은 첨단산업으로의 전환은 반도체 공급에 사활이 걸려있다.

두 번째는 미국이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미국의 발명품이다. 그런 시장을 1980년대에는 일본에 빼앗겼다. 이후 미국은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일본을 죽이고 한국을 키워주었다. 그 덕분에 한국이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의 가장 선도 주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반도체 수출의 60%를 중국과 홍콩에 보낸다. 이런 한국의 역할로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한국은 ‘안미경중’이라는 독특한 조합을 가진 것이다. 최근 공급불안을 경험한 미국은 생산자로서 한국이나 대만이 매우 신뢰할만한 파트너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에서 이들 국가의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생산하거나, 아예 미국 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시 일본을 키우면서 한국과 대만을 길들여보려는 것이다. 과거 미국이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반도체 산업을 전환한 것처럼 현재 미국은 설계와 장비를 가지고 산업구조 전반을 재편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확한 미국의 속내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참여 여부를 통보해달라고 한 ‘칩4 동맹’은 정부 간 합의다. 중국견제를 명분으로 하는 ‘칩4 동맹’의 참여에 대해 중국은 ‘한국의 상업적 자살행위’라고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동맹국으로 중요한 미국과 한국의 수출입 1위를 차지하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입장이 난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 세부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또한, 이것은 미국 반도체 산업과 기업의 이익을 반영한 구체적인 양해방안이나, 중국과 연계된 한국 기업(삼성과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수출의 각각 30%)과 산업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도 해야 한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이 미국 국력의 약화 징표라는 주장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과 이란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대표되는 국가들이 자원시장에서 협력하면서 미국의 입장에 반기를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엔드 분야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과 미국이 시장 주도적인 방안이 아니라 국가 주도적인 방안을 활용해 산업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미국이 강하다는 표시로 볼 수 있다. 향후 국가의 국력 척도를 좌우하게 될 우주 분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도 중요하다.

국제뉴스가 많아질수록 한국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산업구조재편이라는 측면에서 ‘칩4 동맹’ 가입을 피할 수 없는 한국 정부의 외교적으로 세밀한 조율을 기대해본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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