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의와 불의의 싸움 : 영화 ‘한산’과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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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의와 불의의 싸움 : 영화 ‘한산’과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 신희섭
  • 승인 2022.08.0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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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2022년 8월 4일 중국군은 대만의 6개 바다를 둘러싸고 실탄사격을 포함한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이는 대만 전체를 포위해 대만에 대한 항공기와 선박을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중국이 이런 강력한 군사도발을 자행하는 것은 8월 2일 미국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은 7월 31일 미국에서 출발해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한국, 일본을 순방하기로 했고 그 일정에 대만을 포함했다.

평소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안보, 경제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최근 중국과 날을 세우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를 ‘의회 외교’를 통해서 의회 지지를 확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한 것이고 중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발끈하고 있다. 심지어 시진핑 주석은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라고 까지 발언을 했다. 중국군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에서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가는 경우 군사적 공격도 가능하다고 공식발표를 했다. 이에 미국은 핵 항모 전단을 급파했다.

최근 악화한 미·중 관계 속에서 대만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두고 미·중 간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 하지만 중국이 유례없이 강력하게 나오더라도 미국과의 직접적인 전면전을 결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력 면에서 아직 부족하기도 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시 물자 조달도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중국에 대한 국제 제재가 시행되면 러시아와 달리 상호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는 버티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중국은 ‘살라미 전술’을 통해 최대한 대만을 압박하거나 국지적인 도발을 자행하면서 미국과 대만이 어떻게 공동대응하는지를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이도 쉬운 일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처럼 상대에 대한 위협을 구사하겠다는 전략이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대로만 통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 상황을 위기상황으로 몰아 국내적으로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동원해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면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밀고 나가는 국내정치용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기는 하다.

중국이 세게 나가면 미국도 물러서기 어려운 처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중국의 대만 침공에도 미국이 손을 놓게 되면, 미국이 구축한 수많은 동맹은 동맹 자체의 신뢰성을 되물을 것이다. 더 나가 현재 체제를 이끄는 미국의 리더십은 추락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패권국이 가져야 할 ‘권력(force)’과 함께 통치의 ‘명분(legitimacy)’ 모두가 의심을 받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국지적인 도발에도 미국은 개입할 압력을 받을 것이고, 개입한다면 반드시 승리를 획득해야만 한다.

현재 미·중 대립이 최근 개봉한 영화 ‘한산:용의 출현’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일본 포로 준사는 이순신에게 “이 전쟁은 무슨 의미인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이순신은 “이 전쟁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라고 답한다. 이 대사는 매우 인상적이면서도 훌륭한 전략이다. 감독은 전작인 ‘명량’처럼 이순신이라는 한국의 영웅을 그저 ‘국뽕’ 가득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다루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전투가 아닌 전쟁 자체를 ‘의’와 ‘불의’로 다룸으로써 다른 국가 관객들에게도 도덕과 정의라는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한 듯하다.

물론 국제정치에서 ‘정의(justice)’는 어려운 주제다. 국내정치보다 유독 국제정치에서 어려운 것은 ‘의로움’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누가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의 ‘힘의 정치’나 자유주의의 ‘이성의 정치’ 혹은 ‘도덕성의 정치’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서도 해석 역시 다르다. 국제관계의 무정부상태(anarchy)는 국가들에 ‘권력’ 경쟁 만이 아니라 도덕성과 명분 경쟁도 강요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강자였던 일본은 ‘정명가도’를 외치면서 마키아벨리식 권력 정치를 명분으로 삼았다. 반면 조선은 일본 ‘침략’이란 불의에 맞서 의병의 이름까지 걸고 싸웠다. 전쟁이 길어지면 군사력 못지않게 명분과 정당성이 전쟁의 승패에 중요하다. 약자들이 강자들과 싸웠던 많은 전쟁이 이를 입증한다.

현재 시점에서 대만으로 상징화되는 미·중 대립에서 미국은 ‘의’와 ‘명분’을 장악하고자 한다. 펠로시 의장이 강조하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21세기 현재는 의로움이고 정의고 명분이다. 명분이 약한 측은 ‘이(利)’나 ‘권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명분보다 현실적인 이익을 강조하면서 주변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이들을 불러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문제는 미국이 중국보다 더 권력이 강하며 나눌 수 있는 이익이 많다는 점이다.

21세기 미국의 중국에 대한 대처는 소련을 상대했던 냉전 버전보다 더 세련되어질 가능성이 크다. 냉전기 전력도 있고, 여러모로 다루기 까다로워진 중국을 상대로 미국은 인권, 법치주의, 민주주의라는 보편성을 내세우면서 중국의 아픈 곳을 조곤조곤 찌를 것이다. 대만, 홍콩, 티베트, 신장위구르, 독재체제, 부패와 불투명성…….

게다가 동맹과 제휴 관계 등 친구가 많은 미국에 시간이 더 많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독재체제와 달리,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냉전의 승리경험을 가진 미국은 이 대립을 자신이 원하는 어떤 형태로든 승리할 때 끝내려 할 것이다.

문제는 국가 간에 ‘의(義)’와 ‘이(利)’를 나누기 더 어려워진 시대라는 점이다. ‘한산’이란 영화는 “그래도 갈 길은 명확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영화나 냉전처럼 결국은 ‘의’가 이긴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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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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