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단순 주거침입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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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단순 주거침입 범죄?
  • 백소윤
  • 승인 2022.07.28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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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 목적/성적자기결정권 침해한 주거침입 범죄 처벌 강화 필요-

<strong>백소윤 </strong>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침해 된 공간, 침해 된 성적 자기결정권

주민센터에서 1인 가구 안심키트를 무료 제공한다는 현수막을 본 적이 있다. 현관 내부 안전 잠금장치, 창문 이중잠금 장치, 현관 문 앞(외부) 카메라, 호루라기에 접이식 봉을 주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신림동 원룸 거주자를 쫓아와 집까지 들어오려다 실패한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면 단순 주거침입 범죄가 ‘혼자 사는 여성’에게 어떻게 공포를 학습시키는지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범죄로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 피해자들은 각종 불안에 시달린다. 이 불안에 ‘피해’라는 명명을 더하는 것은 과민반응인가? 그 행위가 단순 주거침입죄로만 의율 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하기 위함이다.

범행 목적 주거침입이 죄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 범행의 내용이 강간, 강제추행, 불법촬영인 경우를 상정해 보자. 물리적 공간에 대한 권리, 주거의 평온을 해한 것이 다가 아니다.

그저 한 번의 ‘바라보기’에서 그치지 않았을 수 있다. 성범죄를 당했을지 모른다/당할지도 모른다/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피해자가 경험하는 피해는 성범죄 피해를 경험한 것과 거의 유사한 정도인 것 같다. ‘불안 피해’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격하게 공감이 되는 건 나도 이미 경험했고 언제든지 다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안 피해

불안 피해라는 말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상담통계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만연한 디지털성범죄 때문에 일상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불법 촬영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유포되었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곳곳에 스며서 겪는 힘듦을 의미한다. 법적으로는 누군가 불안피해를 야기했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지만, 상담통계는 갈수록 불안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복도에서 카메라로 타인의 방을 들여다 본 행위

여름 밤, 누군가 자신의 방 창문을 열려고 시도하더니, 창문에 얼굴을 들이대는 것을 봤다면, 누군가 열린 창문으로 촬영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갖다 대는 것을 목격했다면 다시 잠들 수 있을까? 피해자는 누군가 자신의 방 창문을 열려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특별히 증거가 없어 범인을 특정하기가 어려우니 방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해 보라는 제안(?)을 하고 돌아가 버렸고, 피해자는 곧 바로 안 쓰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창가 방향으로 설치했다.

그 날 밤, 누군가 열린 창문으로 얼굴을 들이대고 안을 살피더니 촬영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긴 막대 끝에 설치한 뒤 가져다 대는 것을 목격하고 경악했다. 그제서야 경찰이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CCTV를 요구해 가해자가 특정됐다. 피해자는 관리사무소를 통해 가해자는 몇 년 전에도 이런 문제를 일으킨 전력이 있고, 피해자가 1명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가해자가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다시 경악했다. 주거침입 뿐 아니라 불법촬영(카메라 등 이용촬영죄)로 신고했지만, 수사기관은 주거침입 이외의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 가능성이 없다고 피해자의 말을 끊었다. 가해자의 휴대전화가 범행에 이용된 그 전화가 맞는지, 다른 저장매체는 없는지 물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가해자는 우연히 피해자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고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하고, “휴대전화에 비친 피해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 휴대전화를 가까이 댄 것이라고 창가에 휴대전화를 가져다 댄 것은 인정하면서, 불법촬영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피해촬영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에 제출된 휴대전화가 가해자가 신고당일 소지한 것이 맞는지 소유한(혹은 사용한) 유일한 휴대전화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사는 불기소 결정을 하면서 “실내에 사람이 없어 실행의 착수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불법촬영의 미수로라도 기소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검찰항고를 거친 재정신청도 기각됐다.

범행 발생 후 1년 가까이 지난한 과정(피해자의 노력)을 거쳐, 가해자는 주거침입죄로(만!) 기소되었고 동일 범죄혐의로 인한 기소유예 전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달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집행유예 판결을 보고 또 다시 경악했다. 가해자는 다시 범행 공간으로, 그의(동시에 피해자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성범죄 목적 주거침입 피해의 심각성

분한 감정보다 걱정이 더 앞선다. 사건을 진행하는 내내 구속수사도 아니었던 터라 피해자는 가해자와 같은 단지 내 주거 공간에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피해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이름이 뭔지 다 알 수도 있는 가해자지만, 피해자는 그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 턱이 없고, 분리수거장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스치고도 인사를 나눌 수도 있는 ‘이웃’이라는 게 무서웠다. 사력을 다해 형사절차를 다 거치고 난 지금도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피해자가 인지한 피해 날짜 외에도 가해자는 피해자의 집 복도에 6번 이상 왔었던 사실이 CCTV로 확인되어 범죄일람표에 붙여졌다. 우연도 우발도 아닌 계획된 반복된 범죄. 피해자는 본인이 신고한 날 외에도 촬영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촬영 시도나 촬영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불법촬영피해 불안, 발견되지 않은 증거들에 본인의 피해촬영물이 있다면 혹시 유포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유포피해 불안, 다시 가해자가 집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 일상을 침습한 불안은 화장실, 탈의실뿐 아니라 사무실이나 식당 같은 공간에서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거나 의식하는 방식으로 지속됐다.

판결문에 양형사유로 피해자가 입은 피해의 심각성이 언급됐지만, 가중사유로(혹은 집행유예 부정사유로) 충분히 반영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성범죄로 다뤄지지 않는, 성적 목적의 주거침입

특정한 추가 범행 목적 야간주거침입의 경우 가중 규정이 존재한다. 야간주거침입절도나 야간주거침입 강간 등이 그 예지만, 주거침입 시도에서 범행을 그친 경우 추가범행 의도를 밝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 신체 접촉이 없는 이른바 ‘비접촉 성범죄’는 법률이 적용되는 성폭력으로 인정되기도 쉽지 않다. 누군가 여성전용고시원에 들어와 방마다 문을 열려고 시도하려다 적발된 사건, 고시원 총무가 다른 여성 입주자들의 방에 들어가 속옷을 촬영한 것까지 발견되었는데 성적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신체촬영이 아니어서 추가로 처벌받지 않는 사건, 사범대 과선배가 후배의 빈집에 수차례 들어와 이불에 사정하고 나간 뒤에도 처벌받지 않은 사건, 독서실 총무가 실원의 담요에 수차례 정액을 묻힌 사건 등 주거침입과 재물손괴로만 평가하기에 석연치 않은 사건들이 보도된다. 한편, 대부분의 스토킹범죄, 데이트폭력은 주거침입의 연장선에 있다. 성별화된 범죄로서의 주거침입, 침해된 권리는 성적권리.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범죄다. 침해된 법익이 죄질평가에 반영 될 수는 없을까.

현실은 불안, 불안은 현실

주거침입 범죄 발생률 대비 검거율이 낮아진다는 통계, 주거침입을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만 처벌하고, 그나마도 초범의 경우 훈방 조치되는 현실. 불안은 비단 디지털 성범죄 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더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다시 올지 모른다는 불안, 조심해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도움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 피해자는 형사절차를 밟기보다는 ‘이사’를 선택한다.

피해자가 이를 악 물고, 위험을 무릅쓰고, 형사절차를 밟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수사 내내 ‘지지 않고’ 성범죄 피해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문제제기 했다. 꾹꾹 눌러 적은 탄원서를 법원에 내고, 피해자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면서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피해자가 경험하고 있는 피해의 심각성과 피해회복 가능성을 반영한… 재범을 막을 위화력있는 현실적 양형판단을 호소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피해자의 불안, 여성의 불안은 현실이다. 아직도 불안 피해는 과장된 ‘피해의식’인가? 판결은 확정됐지만, 현재 진행형인 불안 피해의 가해자는 따로 있는 것 같다.

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2년 6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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