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9-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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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9-스승과 제자
  • 손호영
  • 승인 2022.07.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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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허준이 교수가 수학계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국적은 미국이라도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 자퇴 후 대학교까지 다녔으니 우리에게 더 친근합니다. 어린 시절 수학 문제집을 풀다 몰래 답안지를 베껴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던 그가 수학에서 성과를 낸 것은, 대학에서 히로나카 케이스케(広中 平祐)를 만난 것이 터닝포인트였다고 합니다.

히로나카 케이스케는 우리나라에서도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으로 유명합니다(저희 집에도 한 권 있었습니다). 그는 필즈상 수상자로서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혼자 밥을 먹던 그에게 허준이(당시 학생)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그들은 매일 점심을 같이 먹었고, 허준이가 히로나카 교수의 교토 집에 머물기도 할 만큼 가까워졌습니다. 허준이 교수는 이후 히로나카 교수의 추천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곧 수학계의 난제를 해결합니다.

허준이 교수는 히로나카 교수의 가르침 덕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히로나카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오스카 자리스키(Oscar Ascher Zariski) 교수가 교토대학교에 강연을 왔을 때, 그의 눈에 들어 초청을 받아 하버드로 간 뒤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통해 자라고, 스승은 제자의 성과를 통해 다시 한번 칭송받습니다.

허준이 교수와 히로나카 교수의 관계처럼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인 스승을 둔 경우는 바둑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둑 기사로서 국수(國手)라 불리는 조훈현은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은 나의 자아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준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것이다.”라면서, 스승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를 추억합니다. 세고에 선생은 생애 통틀어 딱 세 명의 제자만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제자는 바둑의 흐름을 바꿨다는 바로 그 기성(棋聖) 오청원, 관서기원의 창시자이자 1940~1970년대 사이에 아홉 번이나 우승한 하시모토 우타로, 그리고 조훈현입니다. 단 세 명의 제자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었고 이들이 모두 1인자가 되었으니 그의 안목과 지도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조훈현은 10세이고 세고에 선생이 74세 때 처음 만납니다. 지인을 통한 제자 입문 요청에 이미 고사했던 선생은 조훈현과 지도대국을 한번 둡니다. 1년에 한 판 둘까말까 엄격한 그는 조훈현의 솜씨를 보고는 한 판 더 두자고 한 뒤, “이 아이는 죽는 날까지 내가 데리고 있겠다.”며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조훈현은 그의 마지막 내제자(內弟子)가 되어 9년 동안 선생의 집에서 기거합니다. 선생은 조훈현에게 실제로 바둑을 가르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의아해하는 조훈현에게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선생이 말합니다. “답은 네 스스로 찾아라.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바둑이다.” 선생은 지도도 안할 뿐만 아니라 간섭도 일체 하지 않습니다. 방향을 제시할 뿐입니다. 조훈현이 “나의 자아를 원형 그대로 보존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세고에 선생은 구구절절 조목조목 가르치기보다는 그저 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교육을 갈음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일어나 단정하게 한 뒤, 하루종일 바둑을 두고 책을 읽으며 산책을 하는 평온한 삶을 그에게 보여줍니다. 무덤덤하다 싶을 정도의 그에게 조훈현은 지루함도 느끼지만 그의 진심을 압니다. 세고에 선생이 누누이 말한 “사람이 되려면 인격, 인품, 인성을 모두 갖춰야 해.”라는 말은 지금도 깊이 새기고 있다고 합니다.

조훈현은 군입대를 위해 우리나라로 들어왔고 독립하여 승승장구 합니다. 그는 자신이 세고에 선생에게 받은 것처럼 돌려주고자 내제자를 한 명 받아들입니다. 그가 31세였을 때 받아들인 제자는 신산(神算) 이창호입니다. 이창호는 본래도 과묵했는데 그의 집에 들어와서는 표정까지 사라졌을 정도라고 합니다. 둘은 거의 말이 없었어도 조훈현이 세고에 선생에게 배운 것처럼 그도 이창호에게 온전한 스승이었습니다. 이후 이창호는 어린 나이에 급속도로 성장했고, 스승 조훈현을 이겨냅니다. 스승과 제자가 전성기 시절이 겹쳐버리는 묘한 상황이 발생했기에 이창호는 조훈현의 집에서 나오지만, 오히려 청출어람의 고사를 완성시키며 화룡정점을 찍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습니다. 천재라면 혼자 성장할 수 있을지라도, 적절한 가르침이 동반된다면 그 방향과 속도는 더욱 좋을 것입니다. 법조 실무나 학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또한 사법연수원 교수님, 대학원 지도교수님을 만나 뵌 이후 더 깊은 공부와 연구를 할 수 있었고, 재판부의 부장님들을 만나 뵈며 그분들의 통찰과 업무 방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문헌적) 근거를 찾아봐라.”, “자신이 맡은 사건의 쟁점과 고민, 결론을 요약·정리해봐라.”,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을 구별하라.” 등등 지금도 기억나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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