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8-초상권의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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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8-초상권의 보호
  • 손호영
  • 승인 2022.07.0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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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실제 사람이 아닌 ‘가상 인간’이 미디어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가상 인간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면 과연 그러한가 싶을 정도로 매끄럽습니다.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매력을 느낄 만큼 선호되는 요소들을 듬뿍 갖추고 있으니,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가상 인간 모델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글도 나옵니다. 한 가상인간은 눈, 코, 입 부위별로 설문조사를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녹여내 만들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비판도 이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완벽한 사람을 추구하지 않고, ‘자연스러움’까지 입혀낼 만큼 기술이 발전된 덕분입니다.

소비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모델로 가상 인간을 기용하는 것을 적극 검토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기사 중 눈이 가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특히, AI 모델은 실존하지 않는 가상 인물을 다채로운 얼굴의 캐릭터로 구현해 간단한 설정만으로 초상권 문제없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더빙에 외국어까지…가상인간 어디까지 진화할까, 매경이코노미 2022. 7. 3.자).”

가상 인간이 ‘초상권’ 문제에 자유롭다는 것이, 기사에서 명시적으로 기업이 가상 인간으로 선회하는 것에 대한 유인의 하나라는 기사인데, 과연 ‘초상권’이란 무엇이기에. 어떤 민감한 법적 이슈이길래, 그렇게 표현하는지 법률가로서 한번 되짚어보기로 합니다.

초상권 관련한 대표적 판례는 2006년도 판례입니다(2004다16280). 해당 판례는 초상권을 권리로 인정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 또는 그림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아니하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초상권은 우리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다.” 그리고 그 침해가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음을 선언합니다. “초상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하는데, 위 침해는 그것이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거나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유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아니한다.”

보험회사 직원들이 보험회사를 상대로 후유장해를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들 몰래 그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장해 부위를 정말로 잘 사용하는지 밝히고자, 그들의 아파트 주차장, 직장 주차장, 어린이집 도로 등에서 몰래 지켜보거나 미행하고 때로는 차량으로 뒤따라가며 촬영했습니다. 공개된 장소였고,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초상권을 이유로 불법행위를 인정했습니다. 판단 기준은 이렇습니다.

“초상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두 방향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구체적 사안에서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을 통하여 위 침해행위의 최종적인 위법성이 가려진다. 이러한 이익형량과정에서, 첫째 침해행위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침해행위로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 및 그 중대성, 침해행위의 필요성과 효과성, 침해행위의 보충성과 긴급성, 침해방법의 상당성 등이 있고, 둘째 피해이익의 영역에 속하는 고려요소로는 피해법익의 내용과 중대성 및 침해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보호가치 등이 있다.”

이 설시는 2013년도 판례(2012다31628)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양가 상견례, 데이트 장면 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 촬영한 사진을 보도한 것은 초상권 침해가 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해당 법리는 최근 2021년도 판례(2020다227455)에서도 적용됩니다. 다만 이 판례에서는 초상권 침해에 대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하였습니다.

원고는 층간소음을 항의하러 온 피고와 다툼이 일어납니다. 서로 물리적으로 다투는 과정에서 원고가 피고를 폭행해 상해를 입힙니다. 피고는 원고의 폭행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합니다. 대법원은 이 촬영은, 향후 형사절차(폭행 등)와 관련하여 증거 수집·보전과 전후 사정에 관한 자료 수집을 위한 것으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원고는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이 위 2004다16280 판결과 배치된다고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초상권에 대한 대표적 판례를 새삼 새겨보았습니다. 초상권은 헌법에서 도출되는 권리로 법률상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명료하지는 않습니다. 법률가는 바로 이러한 곳에서 법리를 만들어갑니다. 대법원의 초상권 판례가 유의미한 점은 이러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첨언하자면, 가상 인간이 반드시 초상권 문제에 자유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30대 모델 겸 배우 A씨는...지난 1월 ‘가상 인간’ 모델 시안(試案) 제작을 위한 촬영에 응했는데, 최근에야 자신과 똑 닮은 모습의 가상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A씨는 ‘내 얼굴을 베낀 가상 인간이 활동한다는 사실이 끔찍하다.’면서 ‘모델로서 쌓아올린 자산을 강탈당했다.’고 했습니다(“내얼굴 내놔라”… 가상인간, 인간 모델 초상권 침해 논란, 조선일보 2022. 4. 4.자).” 가상 인간을 모델링할 때 실제 인물을 표본으로 삼을 때, 그의 초상권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떠한 판단이 타당할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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