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양 법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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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양 법학을 위하여
  • 최용성
  • 승인 2022.07.0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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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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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하려면 시민의 법의식 또는 정의 관념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 법의식이나 정의 관념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고 입법, 행정 그리고 사법 제도의 현실, 개인의 법적 경험, 미디어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억울한 사연이 있어 법에 호소하였다가 쉽게 구제받은 사람은 법을 신뢰하겠지만, 법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법을 불신하게 될 것이다. 미디어를 통하여 제도나 사법의 폐해에 대한 보도를 자주 접하면 법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의식/무의식이 형성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 경험이나 대중매체를 통하여 법의식을 형성하는 데에는 큰 맹점이 있다. 법과 제도의 이념, 의미, 가치 등등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한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입은 사람이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승소판결을 받기 위한 요건사실의 입증책임은 대부분 원고에게 있다. 그런데 증거가 부족하거나, ‘나홀로 소송’을 하느라 제대로 주장·입증을 하지 못해 패소할 수도 있다. 또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의 제척기간이 지나 패소할 수도 있다. 이때 억울함을 느낀 피해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았다며 법관, 법, 사법제도를 비난하며 부정적 법의식을 형성하기 쉽다. 그리고 이것이 왜곡된 기사로 대중에 노출되거나, 억울한 사연으로 SNS에 공유되기 시작하면 직접 소송을 체험하지 않은 대중들에게도 부정적 법의식이 확산한다. 법관은 중립적 심판이어서 당사자 중 어느 편도 들어서는 안 되는 당연한 원칙, 증거재판주의, 변론주의, 제척기간 등등 법과 제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오해가 만연하다 보면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과 허무주의만 판칠 위험이 생긴다.

법은 어려운 것이니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아예 포기해야 할까? 그것은 법치주의를 특정 집단의 독점물로 만드는 것을 용인하는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사회에서 법과 제도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기능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 건강한 법의식이나 정의 관념을 고양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와 그 뿌리인 민주주의를 헌법이념으로 내세운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럼 방법은? 법에 무지한 사람들을 위한 여러 가지 공적 지원체계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건강한 법의식을 함양하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교육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학 교육은 법률가를 양성하기 위한 실용적 법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정법의 구체적 규정을 알고 모르고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건강한 법의식과 정의 관념을 가진 시민을 키우는 교양으로서의 법학 교육이 중요하다. 법과 정의, 사법제도, 인권의 핵심 등등을 구성하는 원리, 대립하는 세계관들이 가진 문제의식, 세계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공유하여야 하는 최소한의 헌법 가치 등등에 기초하여 법과 법 현실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그런 교육 말이다. 이러한 교양 법학 교육은 가능하면 빠른 시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법과 정의, 특히 그 중심에 있는 인권 의식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억울함에 대한 공감 능력을 통하여 이성적·논리적으로도 더 확장되고 발전될 수 있는 것인데,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그러한 교육효과는 감소하기 때문이다.

교양 법학의 내용은 고정되어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모든 법학의 공통분모가 되는 기초법학(법철학, 법사학, 법사회학, 인권법학 등등)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초법학이라는 용어를 정립하고 교양 법학의 새로운 길을 연 공로는 법사학자 최종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서양법제사, 한국법제사, 서양법사상사, 동양법사상사, 한국법사상사, 법학사에 이르는 방대한 법사학 분야를 거의 망라한 연구 업적에 더하여 기초법학 전반으로 관심을 넓혀 대중과 소통하려고 노력한 그의 공헌은 빛나는 업적이다. 여기에 더하여 법학자 중심으로 서술될 법학사에는—부당하게—기록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중요한 이름들을 기억해야 한다. <교육과학사>의 김동규 대표와 이만재 상무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수년에 걸쳐 최종고 교수의 주도적 기획과 이만재 상무의 헌신적 노력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실로 다양한 분야의 “법학교양총서” 수십 권이 연속 출간되었고, 법학서를 출간한 적도 없던 <교육과학사>가 손실을 감수하며 이 대담한 기념비적 작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양 법학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준 한국법학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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