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식량과 실업 위기의 튀니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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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식량과 실업 위기의 튀니지 민주주의
  • 신희섭
  • 승인 2022.07.0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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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에너지, 식량, 원자재 가격의 동반 상승. 금리 인상. 스태그플레이션. 공통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대외환경의 변화는 한국도 괴롭히지만, 식량의 50% 이상을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는 북아프리카 아랍 국가들의 고통은 더 큰 듯하다.

2010년. 식량 위기가 누적된 실업 문제와 만나 민주화라는 ‘아랍의 봄’을 이끌었다. 보수적 종교로 평가받는 이슬람 국가들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아랍의 봄’이란 환호성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리비아, 예멘, 시리아 등 대부분 국가는 쿠데타와 내전으로 민주화가 역전되었다. 절차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는 국가는 튀니지 밖에 안 남았다. 그런 점에서 튀니지는 아랍 국가 중 첫 번째로 민중봉기를 통해 독재를 무너뜨린 ‘아랍의 봄’의 시작이면서, 민주화의 마지막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2022년. 튀니지에서 민주화 역행에 대한 우려가 크다.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이 강력한 철권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튀니지는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은 외교를, 총리는 내치를 담당한다. 코로나 대응 실패와 경제난으로 히셈 메시시 내각의 실정에 반대하는 반정부시위가 있자, 2021년 7월 사이에드 대통령은 메시시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헌법학자 출신인 대통령은 헌법을 자신의 논문처럼 다루고 있다. 게다가 의회 기능이 정지된 상태에서 9월엔 아랍 국가 사상 최초로 나즐라 부덴 롬단을 여성 총리로 임명했다. 그녀는 지구과학자로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헌법학자이면서 정치 경험이 전무한 자신과 똑 닮았다.

2022년 2월 사이에드 대통령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법부를 무능과 부패로 문제 삼아 해체했다. 2022년 3월 대통령의 훈령통치를 견제하려는 의회를 ‘쿠데타 시도’로 몰아 해산시켰다. 2022년 7월 국민투표를 통해서 개헌하겠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2014년 12월 어렵게 만든 헌법에 기초해 치른 첫 번째 자유 경선을 통한 대통령 선출 이후 10년이 채 안 돼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절차가 사망할 처지가 되었다. 튀니지마저 비민주주의로 전환되면 ‘아랍의 봄’은 역사로만 남는다.

튀니지는 1956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1957년 쿠데타로 집권한 하비브 부르기바가 30년 독재로 통치했다. 1987년 무혈 쿠데타로 벤 알리가 집권하여 2011년 민주화까지 23년을 독재체제로 유지했다. 2010년 ‘아랍의 봄’을 만든 튀니지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사건 이후 2011년까지 민주화를 어렵게 이루었지만, 튀니지는 자살폭탄테러로 상징화되는 정치적 갈등이 강했다. 2013년 튀니지 노동연맹, 튀니지 산업·무역·수공업연맹, 튀니지 인권연맹, 튀니지 변호사회의 4개 단체가 모여서 만든 ‘튀니지 국민 4자 대화기구’가 헌법제정과 선거관리위원회 설치 등을 주도하면서 2014년 2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같은 해 10월 12월에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치렀다. 이만큼이나 어렵게 만든 튀니지의 민주주의는 이제 바람에도 쉽게 꺼질 작은 촛불 신세다.

왜 이런 상황이 된 것일까? 이 질문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 간 관계의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튀니지는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라고 불릴 정도로 아프리카 국가 중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다. 농업이 경제의 중심(GNP 1/5, 노동인구의 1/4을 차지)이며, 유럽과 가까운 위치로 인해 관광 산업도 발전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랜 독재로 인해 공공경제가 독재자의 사적 경제로 전환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5년에 발표한 World Bank의 자료에 따르면 튀니지의 부패는 회사 예산의 2~5%를 차지하고, 정부의 규제는 회사 예산의 13%를 차지하고, 시간의 25%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부패와 규제의 경제적 비용은 연간 100억 불 정도고, 이는 튀니지 경제의 20%에 해당한다. 더 문제는 독재 시절 벤 알리가 만든 회사들이 통신, 항공, 광고, 부동산 분야를 독점하면서 경제 분야의 21%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이 회사들은 경쟁력은 없는데 비용은 엄청나게 비싸다. 예를 들어 튀니지 항공의 경우 다른 항공사보다 30%는 비싸고 품질은 형편없다고 한다. 해외전화는 다른 국가보다 무려 10배 비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투자가 유치될 리가 없다. 경쟁력 있는 회사가 없으니 숙련노동자나 대학졸업자가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다. 실제 대학졸업자의 17%가 실업 상황이다. 실제 실업률은 15~16%지만 취업 연령대의 실업률은 40%나 된다. 민주화가 된다고 한 국가의 경제적 구조가 바로 바뀌지는 못한다. 민주화의 개혁세력이 부패구조를 고치려 엄청나게 노력하면, 기득세력은 죽을 힘을 다해 버틴다. 이 와중에서 코로나 19가 가세했다. 여행객의 발길은 끊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식량의 50%를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는 튀니지를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아랍의 봄 10주년’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튀니지 국민의 41%가 혁명을 후회한다고 답했다. 또 의회와 사법부를 해산한 대통령의 독재에 대해서도 70%가 넘는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 독재보다 부패가 더 끔찍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이론가인 아담 쉐보르스키는 신근대화이론을 제시하면서 “1인당 국민 소득이 6.055불이 넘은 국가(1990년 민주화 시기 아르헨티나 국민소득)에서 민주화는 역전가능성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경제발전이 민주주의를 당연히 만드는지는 모르겠으나, 경제가 발전한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튀니지가 경제적 여건 때문에만 민주주의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종교문제, 종족문제 등 다른 정치적 갈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는 민주주의의 형성과 유지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2022년 튀니지의 위기는 2010년 민주화를 가져왔을 때와 ‘거의’ 동일한 위기다. 짧은 기간에 역사가 반복되는 듯하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살짝 비틀자면 “한번은 희극으로, 또 한번은 비극으로” 말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2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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