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방위병’의 죽음
상태바
[칼럼] 어느 ‘방위병’의 죽음
  • 송기춘
  • 승인 2022.06.23 1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69년부터 1994년까지 ‘방위병’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방위병’은 소집되어 훈련을 마치면 부대에 배치되어 근무시간에 맞춰 출퇴근하는 군인이었다. 복무기간도 현역에 비해 짧고(상병 전역) 심지어 현역들이 부러워하는 ‘퇴근’도 하고 근무 마치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있다 싶어서인지 자기들만 ‘뺑이친다’고 생각하는 현역들이 깔보고 괴롭히는 게 다반사였다. 필자가 복무하던 부대에도 방위병들이 있었는데, 담당 부사관이 방위병을 호칭할 때 이름이 아니라 보직으로 불렀고 방위병들도 관등성명을 자기 보직명으로 대곤 했다. 예를 들자면, 목공이나 보일러 담당을 부르면 “예, 이병 목공” 또는 “예, 일병 보일러”로 답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저럴 수 있나 싶었지만, 그게 현실이었고 분명한 계급사회에서 가장 힘겨운 대접을 받는 게 방위병이었다. 그러한 차별성을 의식해서였는지, 방위병 대신에 ‘단기사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라는 지침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차별을 명칭 변경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방위병’에 대한 차별은 죽음에서도 나타난다. B는 보충역 판정을 받아 방위소집되었다. 1972년 7월 3주간의 훈련을 위해 훈련소에 토요일에 입소하였다. 교육 첫날인 다음 월요일(7. 31.) 오전 교육을 마친 뒤 점심식사를 하였고, 중대장이 B 등 3명을 데리고 취사장 옆 연못으로 이동하였다. 중대장은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그물을 치도록 하였고 B 등이 물에 들어갔으나 갑자기 물에 들어가면서 심장마비로 사지가 강직되어 B(망인)가 사망하게 되었다. 연못에서 잡은 물고기는 병영 생활의 명랑화와 정서생활을 위해 중대 내 양어장에 넣으려고 했던 것이라 한다.

B의 사망 후 육군본부와 국가보훈처는 사망사고 다음날 망인에 대해 추서 진급(1972. 8. 1.), 순직 결정(8. 9.)을 하였으나 8. 18. 추서 진급을 무효화하였다. 그럼에도 망인은 국가유공자로 등록(9. 1.)되었고 사망보상금 등 보훈보상금을 지급받았다(1973. 1. 25.). 하지만 1973. 4. 28. 육군본부 인사명령으로 순직결정이 무효로 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 전주원호지청은 1973. 5. 8. 국가유공자 등록을 무효라고 결정하였고 5. 29. 사망급여금 등 295,600원을 반환하라고 유족에게 통보하였다. 물가지수를 비교하면 이 금액은 지금 약 500만원 정도에 해당한다. 자식이 죽어 겨우 받은 보상금 30만원은 없는 살림에 금세 사라져버렸는데, 난데없는 보상금 반환요구에 망인의 부모는 전답을 팔아 갚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육군과 보훈처가 순직결정과 국가유공자 지정을 무효로 한 근거는 망인 사망 당시 시행중이던 병역법 제60조이다. 이 규정은 “소집되어 실역에 복무하는 예비역·보충역 및 장교·준사관·하사관·병 또는 무관후보생의 처우는 현역과 같이 한다. 다만, 방위소집에 있어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충역의 하나로서 방위소집된 경우 복무형태가 현역과 다르다고 하지만 군인의 신분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고 출퇴근하는 군인은 장교나 부사관도 있다는 점에서 현역과 처우를 달리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더구나 현역과 다를 바 없이 훈련 소집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재정적 부담을 줄이자는 것 이외에 별다른 이유를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망인이 사망한 직후 개정되어 시행(1973. 3. 2.)된 병역법 같은 조항의 단서는 “다만, 방위소집된 자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급식·실비변상 기타의 처우를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육군본부와 보훈처는 병역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망인의 사망시기에 시행되던 병역법 규정을 들어 순직과 국가유공자 지정 결정을 번복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2005년 육군본부가 유족의 요청으로 발급한 사망확인서에는 망인이 ‘순직’임을 확인하였다. 올해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망인이 지휘관의 관리 소홀로 직무수행중 사망하였음을 확인하고, 국방부장관에게 망인의 사망 구분을 순직으로 재심사하라고 요청하였다. 망인과 유족의 명예가 회복되고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제도로 인한 피해가 보상되기를 바란다.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