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4-이혼의 가치중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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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4-이혼의 가치중립성
  • 손호영
  • 승인 2022.06.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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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동에서는 매년 마을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를 지냅니다. 옛날에는 주민 사이에 이혼한 사람 등이 참석할 경우 부정을 탄다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현재는 누구나 참석하고 있습니다.

동장은 주민자치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통장이 거주지를 변경해 주민자치위원 해촉 사유가 된다고 설명하던 중 “제사에 참석한 주민이 ‘동에 살지도 않는 사람, 이혼한 사람 등이 참석한다.’고 하면서 그런 소문이 들린다.”는 말을 했습니다. 동장은 주민들 몇 명과 저녁식사모임을 하며 마을 제사에 이야기하던 중 그와 같은 이야기를 다시 했습니다.

동장이 한 말을 다시 적으면 이런 것입니다. “어제 열린 마을 제사에 이혼한 ○○가 참석하여 그것에 대해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서 안 좋게 평가하는 말이 있었다.”, “이혼했다는 사람이 왜 마을 제사에 왔는지 모르겠다.” 동장의 말은 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까요?

1심은 이혼 사실 자체만을 전달하는 것은 가치중립적이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지만, 이혼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더해 이혼에 대한 부정적 표현 또는 이혼한 사람에 대한 비난의 내용을 담고 있는 동장의 발언은 명예훼손에 충분히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되었습니다. 피고인이 항소하였지만, 2심도 1심의 판단을 수긍했습니다.

대법원(2020도15642)은 달랐습니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고...사실의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이라는 법리를 전제로 판단을 시작합니다.

동장의 발언은 ○○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하는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않고 ○○의 마을 제사 참여에 관한 의견표현에 지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동장의 발언을 분석해봅니다. 그가 적시하는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① ○○가 이혼하였다. ② ○○가 마을 제사에 참여하였다.

이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평가는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가족생활이 변화됨에 따라 혼인 제도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이 변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감안하면, ○○의 이혼 경위나 사유,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 유무를 언급하지 않고 이혼 사실 자체만을 언급한 것이 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떨어뜨린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가 마을 제사에 참여하였다는 것도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사실일 뿐입니다.

동장이 ○○의 마을 제사 참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은, 그가 이혼한 사람이어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인데, 이것은 그의 마을 제사 참여에 대한 부정적 가치 판단이나 평가를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원심이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와 의견표현의 구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합니다.

해당 판결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1, 2, 3심이 모두 이혼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방송에서 특히 그 변화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솔로 지옥’, ‘나는 솔로’ 등 청춘 남녀의 연애를 주제로 한 예능에서 ‘우리 이혼했어요’, ‘신발 벗고 돌싱포맨’ 등 이혼, 재혼, 돌싱을 주제로 한 예능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2020년 TV조선의 ‘우리 이혼했어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그동안 방송에서 금기시되어 오던 이혼, 재혼, 돌싱에 대한 프로그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난 8일 시즌2로 돌아온 ‘우리 이혼했어요’는 시즌1에 이어 시청률 6%대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2022. 5. 2.자 스포츠경향, 이혼 예능 전성시대)

‘그동안 방송에서 금기시되어 오던’이라는 문구는 이제 ‘선풍적인 인기’, ‘순항’이라는 단어로 뒤바뀝니다. 더 이상 터부시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것으로 소비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혼 시뮬레이션’의 저자인 조혜정 변호사도 세상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2020년 인터뷰입니다. “제가 2005년에 가사사건을 시작했어요. 16년짼데 그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죠. 그때는 여자분들이 와서 ‘이혼 왜 안 하냐’고 하면, ‘부모님이 그 집안 귀신이 되라고 하셔서’라고 했어요. 요즘은 그런 부모님들 없어요. 여기 앉아 있으면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피부로 실감합니다.”

이혼 사실은 이제 가치중립적이고, 그와 같은 사실을 말한다 하여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에티켓은 필요할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 박종석은 “(이혼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공감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데서 느끼는 실망감과 소외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혼을 하게 되면) 자책과 후회로 자존감의 급격한 저하를 겪게 됩니다...자신의 인생의 일부를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는 점이 많은 고민과 우울감을 겪게 합니다.”면서 이혼의 무거움을 이야기합니다. 힘든 시기를 겪는, 혹은 겪었던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자제함이 옳을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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