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3-‘추앙’, ‘해방’, ‘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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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3-‘추앙’, ‘해방’, ‘위작’
  • 손호영
  • 승인 2022.06.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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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최근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용어를 특이하게 쓰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산포에 왠지 모르게 찾아온 구씨는 술을 달고 삽니다.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수다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매일 술을 마십니다. 그가 함께 일하는 이의 막내딸 염미정이 말합니다.

“왜 매일 술 마셔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일상에서 잘 사용되지 않아 낯설기까지 한 ‘추앙’이 대사로 쓰입니다. 구씨가 추앙을 사전으로 찾아본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이라는 추앙은 아무래도 엄격하고 숭고하여 ‘영웅’, ‘성인’에 어울리는 동사인 것 같습니다. 염미정이 구씨에게 바랄 것이라기에는 어색한데, ‘추앙’은 사람에게 쓰이기에 생경한 또 다른 단어인 ‘해방’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극을 이끌어나갑니다. 작가는 추앙의 의미를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듯싶고, 극을 보는 사람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추앙’의 의미를 캐묻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추앙이란 이런 것이고, 이건 추앙인데, 저건 추앙이 아니야.’라는 해석도 굳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강 이해되고 느껴지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딱딱한 정의는 필요 없습니다. 즐기고 감상하면 됩니다. 추앙의 의미에 따라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습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정의하자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람직한 인공지능(AI) 윤리 입법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윤리 법제화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산업 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명확한 개념 정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AI 윤리 법안' 토론회…전문가들 "명확한 개념정의 먼저">

‘명확한 개념 정의’가 되지 않으면 논리가 제대로 설계되지 않습니다. 정교하게 정의된 용어를 기반으로 해야, 설왕설래가 없습니다. 용어는 네 가지 특성을 지니면 좋다고 합니다. 하나의 용어는 하나의 개념을 지칭해야 하고, 반대로 하나의 개념은 하나의 명칭으로 불려야 한다(일의성). 용어는 개념을 반영하니 용어를 통해 그 개념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명시적이어야 한다(투명성, 명시성). 명시적이라고 해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정보가 명칭에 담겨서는 안 된다(간결성). 개념의 체계와 용어의 체계가 일관되게 대응되어야 한다(일관성).

용어는 사전적으로 정의될 수 있고, 약정적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사회적으로 확립된 의미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이고, 후자는 사회적 의미와 별도로 이 곳에서 사용하는 의미를 약속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나의 해방일지>의 추앙은 후자에 속할 것입니다.

법의 용어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에서 쓰이는 의미를 미리 규정합니다. 법에서 정하는 용어는 ① 중요한 특성을 담고, ② 동어반복적이거나 순환적이지 않으며, ③ 그 범위가 너무 넓지 않고, 또한 너무 좁지 않으며, ④ 수사적이거나 불명확하지 않아야 하고, ⑤ 가능한 한 긍정의 표현으로 정의됩니다.

문제는 법에 정의가 없는 용어입니다. 해당 용어의 해석이 문제될 때, 법원은 그 해석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해석은 어렵습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위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시합니다(2019도11294 전원합의체 판결).

“형법 제232조의2에서 정한 ‘위작’의 포섭 범위에 권한 있는 사람이 그 권한을 남용하여 허위의 정보를 입력함으로써 시스템 설치·운영 주체의 의사에 반하는 전자기록을 생성하는 행위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더라도, 이러한 해석이 ‘위작’이란 낱말이 가지는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났다거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추해석 또는 확장해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다수의견의 취지는 사전자기록 등의 ‘위작’에 유형위조는 물론 권한남용적 무형위조도 포함된다는 것으로, 이는 ‘위작’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에 맞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유형위조와 무형위조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형법 체계에서 일반인이 예견하기 어려운 해석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우리 형법에는 ‘위작’에 관한 정의 규정이 없다. 전자기록과 관련하여 ‘위작’이란 용어는 일반 국민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도 아니다. 따라서 수범자인 일반 국민은 ‘위작’의 사전적인 정의 또는 ‘위작’이란 용어가 사용된 형법을 통해서는 ‘위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다수의견과 같이 ‘위작’의 의미를 위조의 ‘위’와 허위작성의 ‘작’이 결합한 단어로서 유형위조와 무형위조를 포괄하는 의미라고 보는 태도는 문서에 관한 형법 조문의 대응 관계, 유형위조와 무형위조를 준별하고 있는 형법의 체계, 그리고 문서에 관한 죄에 대한 일반인의 관념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의견이 나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용어 정의를 촘촘하게 하는 것이 나은지, 그렇다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어려운 문제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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