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6)-'No Stop, No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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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6)-'No Stop, No fail'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2.05.31 10:5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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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No Stop, No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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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top, No fail' 제가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멈추지 않으면 실패는 없습니다.

1월에 변호사시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접수도 하지 못했습니다. 책상에 있는 법서는 어느새 1년째 방치되어 있습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가 왜 자꾸 떠오를까요. 좌절하고 싶지 않은데 답답합니다. 매달 갚아야 하는 학자금대출 이자와 원금은 더욱 점점 늘어만 갑니다. 그런데 이토록 억울하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아버지 없이 컸습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도 공부 하나만큼은 잘한다고 친척들에게 칭찬받으며 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로스쿨 입학 전보다도 더욱 비참해졌습니다. 차라리 로스쿨을 입학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오탈 당한 뒤, 하루하루를 좌절감 속에 살아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살며 변호사시험을 준비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억울합니다. 돈만 많았더라면 저도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 유예가 끝나던 때는 변호사시험을 2번째 준비하던 해였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그래도 그 전까지는 주중에는 공부하고 주말만 알바를 하고 어떻게든 살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젠 반대가 되었습니다. 주중에는 알바를 하고 주말만 공부해야 했습니다. 이자만 갚아야 하는 게 아니라, 원금까지 갚아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 부담이었습니다.

변호사시험을 떨어진 아이들은 신림동에 학원을 다니든지, 동영상강의를 듣든, 스터디를 하든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을 할 수 있었겠지요. 저는 학원은커녕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독서실비조차 없어서 동네 도서관을 가야 했고, 동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먹을 점심값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와서 먹던지 굶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학원에 다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스터디도 부담이었습니다. 시간을 빼기도 어렵고, 스터디를 하며 알게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 과정에서 괜히 드는 여러 가지 비용들…. 그 모든 것은 제게 사치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중, 고등학생들이 드나드는 독서실 출입문 앞에서 독서실 총무를 하며 변호사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학생들이 하나둘씩 새벽 2시가 지나 끝날 때쯤, 저는 언제나 휴게실 책상을 정리했고, 학생들의 책상을 한곳 한곳 지나며 책상 위에 있는 지우개를 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은 물걸레로 닦거나 대형 진공청소기로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나가고 집에 나가면 새벽 3시였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참 행복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던 어느 날, 밤에 자면서 문득 버는 돈에 비해 효율이 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풀타임 근무를 일단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시급이 높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원서를 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지 말라고 STAY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정말 바보 같은 선택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땐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면서 저는 월~토 근무도 했고, 월~금 근무도 했고, 일용직 근무도 했습니다. 기간제 근로자도 했고, 임기제 공무원도 했습니다. 초단시간근로자도 했습니다. 일반직원도 했습니다. 5년간 공부 시간보다 일했던 시간이 더 많았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떻게 공부하려고 발버둥 쳤는지 아십니까. 저는 월~금 근무를 하면서 근무하는척하면서 몰래 공부했습니다. 멍하니 무얼 그렇게 보느냐는 직장 동료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컴퓨터 다른 창에서 변호사시험 기출 지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걸어 다니면서 아무도 모르게 주렁주렁 법리를 외우면서 다녔습니다.

쿠팡 알바를 할 때에는 원래 소지품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휴대폰도 모두 못 가져갑니다. 하지만 저는 몰래 아주 작은 프린트물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외웠습니다. 천장에 선풍기 하나만 매달려있는 그 무더운 한여름. 무수히 내려오는 무거운 토트박스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저는 한 손에 아주 작은 종이 조각을 들고 있었습니다. 외워야 했으니까요.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도 계속 그렇게 공부를 하려 했지만 너무 졸렸습니다. 새벽 4시 45분 첫차를 타고 쿠팡 물류센터에서 8시부터 출석체크를 하고 무거운 것을 하루종일 나르다가 17시에 일이 끝난 뒤, 18시에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 샤워하면 정확히 20시였습니다. 냉동창고에서 아이스크림 박스를 뜯고 아이스크림을 1분 만에 가지고 나왔을 때, 제 안경은 모두 얼어있었습니다. 냉동창고는 손이 너무 시려서 쪽지를 꺼내 볼 수 없어서 아주 싫었습니다. 남들 다 공부하는데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제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도 쿠팡 점심밥은 맛있었습니다.

하루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바보같이 출퇴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하철역에서 새벽이나 저녁마다 보이는 노숙자들도 많이 봤습니다. 저는 그 노숙자들이 저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다들 공부하는데 왜 나는 공부를 할 수 없는지 너무 그 상황이 싫었습니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거 같아요. 인생을 왜 사는지에 관해서 알고 싶어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몇 번 읽어보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도 들어보곤 했어요. 그래도 인생의 정답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유명해진 ‘오징어 게임’을 모두 집중해서 보았는데 정말 의외로 거기에도 인생의 교훈이 많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새벽’과의 구슬치기에서 구슬을 바로 발밑에 던지고 “강새벽! 같이 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지영’, 혼자 남은 ‘일남’에게 같이 하자며 손을 내민 ‘기훈’, 그리고 ‘우린 깐부잖아’, ‘그 구슬 그냥 자네 가져’라고 말한 ‘일남’ 등등 적자생존 게임에서도 아름다운 장면은 의외의 감동을 주었고,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많은 것을 아주 약간이나마 깨달은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사랑샘재단’의 정신을 본받아 저처럼 어렵게 있는 사람들을 위해 돕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제 마음속에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변호사시험 때 보던 책들은 아직 책장에 그대로 꽂혀 있습니다. 너무 오래된 책은 버렸지만, 아주 기본적인 책들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다시 활용하기 위해 여전히 공부를 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패배의식이 생겨난 것은 너무 원통합니다. 열등감도 생겨버렸습니다. 짜증납니다. 억울하기도 하고요. 저도 하면 되거든요. 하면 됐었다고요. 근데 전 할 수 없었습니다.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이해 못 한다는 게 너무 억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시험 칠 기회조차 없다는 게 너무 억울합니다. 저는 로스쿨 제도를 위한 들러리였던 거 같습니다.

이럴 거면 로스쿨 제도에서 특별전형 제도를 없애주세요. 저는 로스쿨 입학할 때, 특별전형으로 입학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성적우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탈이라니요. 참 답답하고 억울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요즘 더욱 억울한 것이 무엇이냐면, 저도 분명 법에 대해서 충분히 많이 알 수 있고, 법에 대해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오탈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러 가지 자격지심이 생겼다는 겁니다. ‘오탈’이 곧 ‘법에 대한 무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취급당하는 거 같아서 억울합니다.

제가 일하며 다닐 때마다 가끔 노숙자를 보곤 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를 가기 위해 서울역을 가면 새벽 추운 곳에서 누워 있다가 ‘추워요…. 저기 문 좀 닫아주세요’라고 제게 부탁한 노숙자분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토요일 아침 8시 강남역 거리에서 바닥을 끌고 다니는 장애인분도 아직 기억합니다. 이런 분들에 비하면 저는 무척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현재 제 인생의 목표는 ‘오탈자임에도 불구하고’입니다. “오탈자라면서 그게 가능해?” 이 소리를 듣도록 부단히 다시 ‘일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나아진 편입니다. 정규직에 입사했습니다. 알바하던 시절이나 일용직을 하던 시절보단 나아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도 출근 전 시간과 퇴근 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철마는 다시 달리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다시 일어나서 ‘사랑샘 재단’에서 지원해주시는 마음과 정신은 매우 소중하게 이어받고 싶습니다. 그 마음과 정신을 항상 마음에 새긴다면, 저도 언젠가 다른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종의 동기부여가 되는 정신적 지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이 혹시 삶의 목적이자,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혹시 5탈 제도가 위헌결정이 난다거나, 사법시험이 부활해서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길이 행여 열린다면, 그 때에도 ‘사랑샘 재단’의 정신을 충실히 이어받은 훌륭한 법조인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제 미래의 계획은 어쩌면 ‘사랑샘 재단’의 마음과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 마음과 정신의 1%만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제 미래를 위한 작은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동기부여를 하게 해주신 오윤덕 이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ps. 5탈제도는 아주 나쁜 제도라고 확신하고 또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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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부활 국민연대 2022-12-31 20:06:38
사법시험 부활을 같이 기원합시다..!

ㄱㄱ 2022-05-31 14:14:32
법조기득권들이 로스쿨 취지를 짓밟고 멋대로 자격시험을 선발시험으로 바꿔버렸고, 그것을 수단으로 하여 매 해 애꿎은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고시낭인으로 전락시켜가며 사익추구에만 힘써온 결과일 뿐이죠.....

지나가던이 2022-05-31 13:50:36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국가에서 시험응시를 막는건 이해할수가없네요. 제도가 개선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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