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1-사실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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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1-사실과 평가
  • 손호영
  • 승인 2022.05.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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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미국 프로농구 NBA의 MVP는 기자단이 해당 시즌 가장 가치 있는 선수(Most Valuable Player)를 투표로 선정합니다. 니콜라 요키치(Nikola Jokić)는 NBA에서 2년 연속 MVP를 수상합니다. 빅맨이면서도 넓은 시야와 빠른 판단, 유연한 게임 플랜을 구비한 그는 당연히 MVP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 그는 MVP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 모든 개인적 수상은 사람들이 뽑는 것입니다. 우승은 당신이 쟁취하는 것이고요(All those individual awards are people picking who wins it…a championship is something you win).”

‘개인적 수상보다는 우승에 더 집중하겠다.’는 취지로 가볍고 전형적으로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상(award)과 승리(더 나아가 우승)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추켜세우는 것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손사래를 치며, 어느 때나 냉정하고 태연하여 너무 들뜨거나 축 처지는 법이 없습니다. 사실과 평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통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승리나 우승은 그와 그의 팀이 얻어낸 사실이자 결과입니다. 수상을 하든 안하든 그 사실과 결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그 승리나 우승의 내용을 평가할 수는 있어도 그 자체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굳고 단단합니다.

평가는 사실에 비해 무르고 연약합니다. 어떤 사실이 재평가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어떤 가수의 곡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한다는 말은, 곡 자체는 그대로 있는데 그 곡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평가이고 그 평가는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평가를 좇는 것은 변하는 것,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을 얻고자 한다는 의미입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를 오래 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젊은 화가에 대해 평론가들이 말합니다. “그 젊은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깊이가 없다’니? 예술가는 실의에 빠지고 자신에게 없다는 ‘깊이’를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합니다. 이런 시도, 저런 시도를 해봐도 오히려 엇나가고 평론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좌절한 그는 극단을 선택하고 맙니다. 그의 죽음에 평론가가 추모합니다.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이고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평론가가 인정한 ‘깊이’는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깊이’라는 것이 평론가의 말로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있어지는 그런 허무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는, 평가보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대체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각인된 임동조 석공의 인터뷰를 찾아보았습니다. 석공은 우리나라 문화재의 복원 사업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조선 5대 궁궐 복원 등 작업에 모두 그의 망치질이 배어 있습니다. 2009년 인터뷰입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아무리 솜씨 좋은 석공이라도 일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노하우가 뭡니까?” 석공이 말합니다. “처음부터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일을 맡기는 분께 이익이 가게 해야지요. 그래야 그쪽에서도 ‘저 사람 필요한 사람이구나’하고 평가하는 겁니다. 제가 아는 건설회사 회장께 받은 첫 공사가 2000만 원짜리였어요. 그걸 잘해내니 1억 5000만 원, 다음에 8억 원, 그다음에 창덕궁 30억 짜리였어요. 이번 광화문 공사에는 50억 원이 들지요. 작년에 석재비가 많이 올라 크게 남는 건 없지만 평판은 그렇게 쌓아 올리는 겁니다.” 일을 해나가다 보면, 평판은 따라오는 것이라는 그의 신조입니다. 사실이 먼저고, 평가는 그 다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민할 것은, 일단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수험생이 스스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실무가로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과 다른 사람이나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것 또는 주어지는 것을 구별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집중해서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전문직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니콜라 요키치가 처음 NBA에 입성할 때 순위는 41위였습니다. 41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팀에서 그를 선택했습니다. 이후 그는 괄목할 만한 객관적 기록(stat)을 세웁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41번째로 불리지 않습니다. 2년 연속(아마 그 이상의) MVP 수상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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