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02)-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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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02)-국민투표
  • 신종범
  • 승인 2022.05.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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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법률사무소 누림
신종범 변호사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제 곧 야당이 되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권한을 폐지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법안을 새 정부 출범 전까지 통과시켜 검찰개혁을 마무리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이를 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이라는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이라고 부르고 ‘검수완박’이 구(舊) 정권의 부패를 덮기 위한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극렬한 대립 속에 합의에 의한 법안 처리가 불가능해지자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수를 내세워 단독으로라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이후 예상되는 장면은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온, 여야 국회의원 간 몸싸움 등 아수라장이 된 국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가 합의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원만히 처리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합의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국민의힘이 합의문을 파기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법사위 소위부터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법안 처리를 강행하였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filibuster. 무제한 토론)로 맞서자 민주당은 살라미(salami. 회기쪼개기) 전술로 이를 무력화시켰다. 의석수에서 밀리는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윤석열 당선자측에서 국민투표 이야기가 나왔다. 새 정부 출범 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에 대하여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라고 하여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國民投票附議權)을 규정하고 있다. 당선자측에서는 이 규정에 따라 새 정부 출범 후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민주당이 통과시키려는 법안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국민투표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당선자측의 국민투표 발언 이후 검찰의 수사권한을 폐지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이 헌법 제72조가 규정하고 있는 국민투표 요건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른바, ‘검수완박’이 헌법 제7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외교’, ‘국방’, ‘통일’과 관련이 없음은 명백하다. 그러면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있을까? 혹자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은 형사사법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국가안위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무엇이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인가의 판단과 그것을 국민투표에 붙일 것인가의 결정은 대통령의 재량에 속하므로 국민투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은 정부기관 간 권한을 조정하는 것에 불과하여 국가안위와는 무관하고, 이는 입법권을 갖고 있는 국회의 고유권한이며, 헌법 제72조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30조 제2항과 더불어 현행 헌법에 있어서 대의제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그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하므로 국민투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이미 효력이 발생한 법률에 대하여 그 효력을 다툴 수 있는 위헌법률심판 등 헌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국민투표를 통해 그 효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헌법상 국민투표 요건에 해당하는지와는 별개로 국민투표법의 일부 조항의 효력이 상실된 상태라 개정입법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도 없어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7월 국내에 주민등록이나 거소(居所)가 없는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국민투표법 제14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2015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시켰지만, 이후 국회가 개정절차를 이행하지 않아 이 조항은 효력이 상실된 상태다. 결국, 새로운 입법이 마련되지 않는 한 투표인명부를 작성할 수 없어 국민투표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민투표는 모두 6회 실시되었다. 4회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였고, 2회는 헌법개정과 대통령의 신임투표를 결부시킨 복합적인 국민투표였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부여받은 국민투표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헌법에서 그 개정절차의 일부로써 예정하고 있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아닌 다른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상황은 정치가 실종되고, 헌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임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신종범 변호사/법률사무소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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