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식용유, 밀가루, 휘발유 그리고 탈세계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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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식용유, 밀가루, 휘발유 그리고 탈세계화 논쟁
  • 신희섭
  • 승인 2022.05.0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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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4월 28일부터 인도네시아 정부가 팜유 수출을 중단했다. 인도네시아는 전세계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국가인 만큼, 팜유 수출중단 결정은 세계 식용유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수출중단이라는 극단적 정책을 사용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유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생산과 수출이 막히자, 팜유 생산업자들이 인도네시아 정부가 정해놓은 국내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는 세계 시장에 수출하다 보니 국내용 팜유가 모자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 발표에 따르면 식용유 가격은 3월에만 23.2%가 올랐다. 이 때문에 영국, 스페인, 그리스, 터키, 벨기에가 식용유 구매를 제한하고 있다.

팜유의 56%를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는 한국엔 그대로 불똥이 튀었다. 2021년보다 식용유 가격이 40%가 오른 한국은 나머지 44%를 수입하는 말레이시아 팜유를 더 늘려야 한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팜유도 1년 전보다 162%나 급등한 상태다. 라면 제조업체들이 말레이시아산 팜유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라면값 인상이 큰 걱정이다. 밤의 단짝인 치킨은 말할 것도 없다.

밀가루 가격도 천정부지다. 한국 소비자단체 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밀가루 가격은 15.2%나 올랐다. 세계 밀수출의 30%를 차지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밀가루 가격은 더 오르게 될 것이다.

1970년대, 2006년, 2010년에 이어 곡물 가격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높은 변동성은 밀수요선물시장을 2010년 대비 7배가 키웠다. 돈이 되니 곡물 시장에 비상업적 수요도 몰려들고 있다. 게다가 곡물 시장의 비탄력적인 수요까지 겹쳐 문제가 커지고 있다. 곡물은 작은 수요라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게다가 수요도 계절적이다. 카길과 같은 4개의 곡물 메이저 회사가 곡물 교역의 80%와 저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공급 측의 비탄력성까지 겹치면서 곡물 가격 상승의 끝은 알기 어렵다.

더 끔찍한 이야기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석유 가격과 가스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이 역시 한국에는 직격탄이다. 통계청의 4월 소비자 물가 동향에 따르면 석유류는 34.4%, 휘발유는 28.5%, 경유는 42.4%, 자동차용 LPG는 29.3%가 올랐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비료 가격을 3배나 올렸다. 예를 들면 질소비료의 40%를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만들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세계의 저성장과 고물가에 정점을 찍고 있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탈세계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1991년 탈냉전과 함께 강화한 세계화 즉 상품, 자본, 인간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세계화의 폐해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화를 하면서 러시아를 원자재 공급국으로, 중국을 제조업의 중심으로 삼아서 글로벌밸류체인(GVC)을 만든 것이 이 사단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에너지와 원자재를 공급하는 러시아가 전쟁을 오래 끌면서 세계는 글로벌하게 고통받고 있다. 만약 푸틴의 전쟁계획에서 장기전을 통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면, 그의 계획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가상승으로 개도국들이 나가떨어지고 있고, 선진국도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세계화는 신흥국가들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2001년 WTO에 가입할 당시 중국은 세계 GDP 4%였지만, 2021년 17.7%(IMF 통계)가 되었다. 반면 2001년 세계 GDP의 40%였던 미국은 2021년 기준 24.1%까지 하락했다. 러시아의 경우 소련이 해체된 뒤 1992년 GDP는 860억 불이었고 1인당 GDP는 575달러에 불과했다. 2021년 GDP는 1조 7,110억 달러나 되어 GDP 기준 세계 11위로 올라섰다. 1인당 GDP도 1만 1,654달러가 되었다.

이들의 국력이 강해지면서 영향력도 따라 증대했다. 코로나 19사태로 면봉이 없어 애를 먹은 서방국가들은 세계화의 가장 대표적인 정책인 오프쇼어링(offshoring: 기업 일부를 해외로 옭기는 것)의 부작용에 화들짝 놀랐다. 2008년 미국 경제 위기에서 불거진 ‘탈세계화(Deglobalization)’ 논의가 재점화되었다. 러시아의 침공은 화룡점정이 되었다.

문제는 이 탈세계화 과정이 관계 청산을 의미하는 탈동조화(Decoupling)와 함께 ‘민주주의 vs. 비민주주의 구조’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신냉전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변동은 냉전의 낮은 수준의 상호의존과는 다른 구조에서 진행된다. 서로가 밀접히 연결된 상황에서 관계 청산이 과거 냉전기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구조 변동은 무역의존도가 2018년 기준 66.08%인 한국에게는 커다란 부담이다. 당장에 한국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군사 무기 지원요구에도 러시아와의 군사기술협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탈세계화 논쟁이 자원이 많은 미국에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일 수 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국가인 미국을 제외하고 이 논쟁은 국가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특히 자원이 부족하고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국가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 러시아 문제를 중국에 대한 본보기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대외침략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똑똑히 보여 중국의 확장정책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 자신의 마초 이미지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푸틴도 쉽게 물러서지는 못한다. 초반 예상과 달라진 상황에서 러시아도 전쟁 장기화를 통해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다.

그래서 주택가격 상승과 물가상승으로 이래저래 고통받고 있는 한국에게는 2022년은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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