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스리랑카의 디폴트 선언과 힘의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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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스리랑카의 디폴트 선언과 힘의 공백
  • 신희섭
  • 승인 2022.04.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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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4월 12일 스리랑카는 510억 불의 대외부채 상환을 거부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가 부도’라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문제는 경제 위기의 후발주자가 줄줄이 대기 중이란 점이다. 파키스탄, 이집트, 페루, 아르헨티나, 레바논이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라 외환 보유가 바닥나고 있고, 물가는 로켓처럼 치솟고 있다.

스리랑카의 경제 위기 원인과 이로 인한 강대국의 영향력 경쟁은 ‘경제위기론’ 교과서를 옮겨 놓은 듯 하다. 식민지 역사와 외부요인 그리고 부패한 정치들이 결합한 제 3세계 경제위기론의 전형이다.

한편, 경제 위기를 다루는 것은 조심스럽다. 13시간씩 강제 단전에 석유와 의약품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스리랑카 국민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한시라도 빨리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반면교사로서 분석은 꼭 필요하다.

스리랑카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전쟁 장기화로 원자재 가격과 연료 가격과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있어, 외화가 부족한 스리랑카에 재앙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다. 구조적 요인의 첫 번째는 식민지 경제의 유산이다. 스리랑카는 1800년대 초반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차를 좋아하는 영국에 의해 홍차 농업을 특화하였다. ‘실론 티’로 유명한 스리랑카의 차는 연간 34만 톤의 생산량으로 세계 4위에 해당한다. 1,924천 톤의 중국, 1,208천 톤의 인도, 432천 톤의 케냐 다음이다. 차 중심의 농업이 스리랑카 수출의 21%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구조적 요인의 두 번째는 소득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에서 47%는 의류가 차지하고 있다. 관광 수입이 GDP의 10%인데 홍차는 관광상품에서도 중요하다. 저임금 노동자 수출과 이들이 보내는 해외송금이 외화소득의 4번째 요인이다. 제조업이 발전 못 해 해외에서 생필품을 의존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40%대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은 해외시장의 가격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대외 취약성이 높은 경제구조는 특정 사건에 의해 바로 문제가 될 수 있다. 2019년 4월 발생하고, 258명이 사망한 ‘부활절 테러’는 대체로 불교국가인 싱가포르에 온 기독교인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관광객이 뚝 끊긴 것이다. 게다가 2020년에는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는 해외 근로자 파견도 막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44억 달러였던 관광 수입이 2021년에는 2억 6천만 불로 주저앉았다. 해외송금도 대폭 감소한 상황에서 해외 수입은 늘어나고, 스리랑카 화폐인 루피 가격이 폭락해 해외 수입 대금은 더 높게 치솟아 오르고 있다.

구조적 요인의 3번째는 약한 경제와 화폐다. 물자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기 때문에 외환보유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경제여건이 안 받쳐주기 때문에 외환 보유액도 넉넉하지 못하다. 2018년 가장 외환 보유고가 높을 때도 90억 달러를 보유하였고, 2022년 3월 기준으로는 19억 3천만 달러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 스리랑카가 갚아야 할 빚은 510억 달러고, 2022년에만 상환해야 할 액수가 70억 달러다. 전기를 발전하는데 필요한 원유나 식량을 사려면 달러가 필요한데 이마저도 없는 것이다.

내부적인 요인으로는 종족분쟁도 위기에 한몫한다. 전체인구의 75%는 싱할라족이고 이들은 불교를 믿는다. 인도계인 타밀족이 15%에 해당하며 이들은 이슬람교도들이다. 역사적으로도 오래 대립해온 이들 간의 분쟁은 1983년 ‘검은 7월’에서 30년 내전으로 이어졌다. 2009년 타밀 반군이 항복하면서 내전은 끝났지만, 종족과 종교 간 대립은 여전하다.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에서 답 없는 종족분쟁과 종교분쟁까지 가세해 있다.

내부적인 요인에서 더 큰 문제는 정치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을 마힌다 라자팍사가 지배했다.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뒤 2019년 4월 테러가 발생하자 그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라자팍사의 동생인 고타바야가 대통령이 되었다. 마힌다는 다시 총리가 되었고, 동생 두 명과 조카까지 장관에 임명하였다. 이들 가족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편승해 중국에 기댔고, 해외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조차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 8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 채무는 함반토타 항구를 99년간 중국에 넘겨주는 사태로 이어졌다. 정당 간의 민중주의 노선 경쟁은 약한 경제의 기초체력을 극단으로 몰아갔다. 게다가 자국 화폐를 남발하는 정책은 약한 화폐를 더 약화시켰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펑!’ 터진 것이다.

싱가포르의 외생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을 무시할 수 없지만, 잘못된 정치적 선택의 결과는 잔인하다. 소비자 물가는 18.7%, 식료품과 의약품은 30.2% 상승하였다. 가난한 계층일수록 고통은 더 크다. 의원내각제와 사회주의를 기저에 깔고 있는 정치체제 특성이 가져온 ‘폭탄 돌리기’의 뇌관을 때린 것이다.

스리랑카의 위기는 다른 신흥국의 도미노 현상의 첫 번째 징후라는 것 외에도 중요한 점이 있다. 스리랑카의 위기를 두고, 지역 내 권력투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선 옆 나라 인도의 지원과 개입을 불러왔다. 인도는 현물을 포함해 25억 달러를 지원하였다. 최근에는 20억 달러 추가 지원을 논의 중이다.

일대일로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도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중국도 25억 달러를 지원하려고 한다. 중국이 차지한 함반토타 항은 일대일로에서 인도양과 중동의 연결에서 매우 중요하다. 파키스탄과 실질적인 동맹인 중국이 스리랑카를 차지하면 인도를 압박할 수 있다. 파키스탄 과다르항과 미얀마의 차우퓨항은 중국에 말라카 해협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송유관 연결의 핵심인데 스리랑카는 이 두 지역을 연결할 수 있게 한다.

채무를 이용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미국이 그대로 두고 보기 어렵다. 현재 미국은 중국의 해양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IMF를 통해 스리랑카 위기를 해결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해야 한다. 미·중 대립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스리랑카는 IMF에서 40억 달러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인도 역시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후 미국-중국-인도의 영향력 경쟁이 예상된다.

러시아가 만든 경제 위기 파도는 강대국 권력 정치의 새로운 장을 만들고 있다. 상당히 힘이 세진 한국도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볼 것은 아니다. 전략적으로나 인도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이나 국가나 어려울 때 친구가 좋은 친구 아닌가!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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