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68-승진의 재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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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68-승진의 재량
  • 손호영
  • 승인 2022.04.2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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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전국시대 오기의 일화는 지금까지 군에서 리더쉽의 표본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전쟁터에 군대를 이끌고 나간 그는 한 말단 병사가 등에 종기가 났다는 소식을 듣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 치료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합니다. ”장군께서 친히 아드님을 치료해주었는데, 기뻐할 일이지 왜 슬퍼하는 것이요?“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울며 말합니다. ”이제 그 아이는 돌아오지 못할 듯합니다. 장군께서는 그 애 아버지의 고름도 빨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싸우다 죽었습니다. 그 애의 운명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오기는 늘 병사들과 더불어 입고 마실 정도로 군을 성실히 이끌었고 공을 세웁니다(吮疽之仁).

오기는 그 자신이야말로 재상 자리에 걸맞는 인물이라 여겼는데, 정작 승진은 전문이라는 사람이 합니다. 자부심이 가득했던 오기는 내심 마음에 차지 않아 그를 찾아가 묻습니다. “병사를 지휘하면서 사기를 높이고 적국으로 하여금 감히 우리를 얕잡아 보지 못하게 한 공적은 누가 큽니까?” “장군께서 크십니다.” “백성들과 가까이하여 국고를 가득하게 한 공적은 누가 큽니까?” “장군께서 크십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나의 윗자리에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문이 찬찬히 말합니다. “왕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하들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백성들도 믿지 못합니다. 이런 때에 재상 자리를 장군께 맡기겠습니까, 아니면 저에게 맡기겠습니까?” 오기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말합니다. “당신에게 맡기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장군보다 윗자리에 있는 까닭입니다.”

왕의 깜짝 발탁에 오기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합니다. 공적의 크기로 보나 그동안 들인 노고의 정도로 보나, 오기가 재상 자리에 걸맞을 듯 합니다. 그러나 왕은 전문을 택했고 그에는 그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기와 전문의 일화를 보면,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과연 쉽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깜짝 발탁은 역사상 제법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직전 해 선조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파격 승진을 단행합니다. 사간원은 “이순신은 현감으로 아직 군수에 부임하지도 않았는데 좌수사에 초수하시니 그것이 인재가 모자란 탓이긴 하지만 관작의 남용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라며 말립니다. 이에 선조는 “나도 안다. 다만 지금은 상규에 구애될 수 없다. 인재가 모자라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면 충분히 감당할 터이니 관직의 고하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다시 논하여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고 답합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의 이름은 불멸로 남기에 이 논의는 잊혀졌지만 당시 승진과 관련하여 잡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강릉시에 4급 공무원 결원이 발생합니다. 행정직렬 3자리, 시설직렬 1자리에 따른 승진임용을 해야 하는데, 강릉시장은 총무과장과 인사계장으로 하여금 3명의 결원이 발생한 행정직렬 4급에 관하여는 1명의 승진임용 사전심의를, 1명의 결원이 발생한 시설직렬 4급에 관하여는 승진임용이 아닌 직무대리자 임명의 사전심의를 인사위원회에 요청하도록 하였고, 직무대리자로 발령한 이들 모두 직무대리 명령서가 아닌 임용장을 교부받고 국장 직무만 전담하여 수행합니다. 1, 2심은 ‘피고인이 인사위원회에 행정직렬 3자리, 시설직렬 1자리에 대한 승진임용 사전심의를 요청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피고인이 인사위원회의 승진임용에 관한 사전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도록 하여 승진임용에 관하여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였다며 그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대법원(2021도13197)은 “지방공무원의 승진임용에 관해서는 임용권자에게 일반 국민에 대한 행정처분이나 공무원에 대한 징계처분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광범위한 재량이 부여되어 있다. 따라서 승진임용자의 자격을 정한 관련 법령 규정에 위배되지 아니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춘 사유에 따른 것이라는 일응의 주장·증명이 있다면 쉽사리 위법하다고 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법리 하에, “승진임용에 관해서는 인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하였을 뿐 그 심의·의결 결과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임용권자는 인사위원회의 심의·의결 결과와는 다른 내용으로 승진대상자를 결정하여 승진임용을 할 수 있다.”며 “임용권자가 발생한 결원 수 전체에 대하여 승진임용의 사전심의를 요청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결원 수의 일부에 대하여만 인사위원회에 승진임용에 관한 사전심의를 요청한 것만으로 인사위원회의 사전심의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즉, “피고인이 직무상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임시적 조치로서...직무대리 발령을 한 것이 오로지 특정한 사람을 승진시키기 위해 통상의 승진임용 절차를 회피할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승진재량 법리에 대하여는 이미 행정판례(2015두47492)에서도 설시된 것인데, 형사판결에서도 이를 인용하였습니다. 승진이란 개인의 과거 공적에 대한 인정이자, 미래 성과에 대한 기대의 조합 함수이고, 그만큼 고도의 의사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승진임용에 대해 다툼이 있을 때, 대법원은 형사사건에서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그 행위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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