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 (3)-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태바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 (3)-그럼에도 불구하고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2.03.28 13: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수현(필명)

1. 2014

2014년에 로스쿨 6기로 입학했으니, 벌써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로스쿨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한 로스쿨에서의 생활은 돌이켜보면 꽤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학교라는 제도 내에서 생활은 안정적이었고, 주위의 인정도 받았고, 뛰어난 동기들과 열심히 공부했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안할지언정 꽤나 근사한 꿈을 꾸었다고 추억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2. 헌법, 국가, 세월호

2014년 4월 16일이었다. 그날 나는 로스쿨 1학년 1학기 헌법 중간고사가 있어서, 도서관에서 밤새우며 헌법 교과서를 뒤척였다. 새벽 무렵 문득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 보았는데, 진도 부근 해상에서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뉴스가 속보로 올라왔다. 시험에 들어가기 직전 ‘승객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안심하며 시험을 치고 나왔다, 하지만 전원 구조는 오보였으며, 수백 명의 학생들이 배에 갇혀 사망했다는 뉴스가 이후 며칠간 대한민국을 덮었다.

헌법은 곧 국가이념에 관한 학문이다. 헌법 교과서 내에서 추구하는 국가의 모습은 참으로 정의롭고 이상적이었기에, 다른 과목보다 헌법을 좋아했고,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런데 내가 공부하고 배운 책 속의 국가와, 실제 국가는 왜 이리도 다른 것일까. 처음으로 법학과 법 공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3. 사시존치

2015년 12월 3일. 어쩌면 젊은 시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 아니었을까.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준비에 들어가던 시점이었다. 뜬금없이 당시 법무부 차관이 뉴스에 나와 ‘사법시험을 존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국가와 제도를 믿고 로스쿨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아픔은 얼얼했고, 참 많은 갈등과 내부과정이 있었지만 일단 투쟁을 하기로 결의했다. 자퇴서를 냈고, 집회를 했으며, 카드뉴스를 만들고, 수업을 거부했다.

단체행동을 하는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은 ‘로퀴’니 ‘음서제’니 ‘금수저’니 하면서 손가락질했다. 포털과 커뮤니티는 악플로 뒤덮였다. 도대체 착실히 공부해서 로스쿨 와서 또 공부밖에 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여튼 그렇게 욕을 먹었다. 특히나 소위 ‘법조 선배’라는 분들이 그런 흐름에 앞장서 있는 모습은 참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4. 법률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법조에 대한 관점이 바뀐 것이,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왜 법조인이 되어야 하는지”, “왜 이 힘든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스스로 납득가능한 이유를 잃었다. 돈이나 권력, 명예 등 표면적으로 법조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마음속 나의 꿈은 더 이상 법조인이 아니게 되었다. 법조계 내부의 현실을 알면 알수록 이 길이 맞는 길인지 회의감은 커져갔고, 동기부여는 떨어져만 갔다.

정의와 인권을 향하며 국가와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다들 원대한 꿈이 있었을 선배들은 합격 후 상당수가 당장 밥벌이에 바빠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에 부려 먹히며 영혼 없는 서면 기계가 되어 있었다. 사시 출신, 로스쿨 출신, 법무부, 변협, 로스쿨 교수, 판사, 검사, 공부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등등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로스쿨 제도는 산으로 가버렸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학생들이 당하는 것을 경험했다. 딱히 공정하지도, 딱히 정의롭지도, 딱히 보장된 미래가 있지도, 딱히 적성에 맞지도 않은데, “왜 나는 법조인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수험기간 내내 도저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5. 희망고문

그래도 공부를 그리 못 하거나 안 한 것은 아니어서, 졸업시험도 한 번에 통과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담당 교수님이나 학교에서도 나에게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이후 다섯 번의 변호사시험은 ‘희망고문’이라는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5년 이내 5회라는 시험 제한은 참으로 악랄한 규정인데, 시험을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찾아가고 싶어도 지금을 놓치면 평생토록 시험을 못 본다는 기간 제한에 억지로라도 포기할 수 없게 만든 장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변호사시험 제도가 정상적이었다면 지금과 또 다른 미래가 있었겠지만 -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탈자’가 되어보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생겼다. 주변에서 나에게 가지고 있던 기대감과 중압감이 사라졌다. 더 이상 원치 않는 법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오지 않는 연락은 지금 둘러싼 문제에 관해 깊이 집중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 중압감에 무거웠던 어깨가 가벼워졌고, 자유로워졌으며,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과, 평생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을 알게 되고,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과거 법을 공부할 때나, 스타트업에서 앱을 만드는 지금이나 나의 꿈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를 아껴주고 믿어주는 이들을 위해 살아가며, 세상에 도움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다만 그 수단이 법에서 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조금은 더 노력하면 될 뿐. 나는 성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