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미국의 대중국 정체성과 변화하는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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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국의 대중국 정체성과 변화하는 국제관계
  • 신희섭
  • 승인 2022.03.2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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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명확하다. 러시아와 직접 충돌을 피하면서도 러시아의 위협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러시아와 전쟁까지 가지는 않지만, 전세계에 산재한 동맹에 대한 신뢰성은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3월 23일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죽음과 파괴를 초래한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라며 푸틴을 전범으로 공식화했다. 이것은 전쟁이 단순한 ‘이익(interest)’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과 규범의 문제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도덕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미국이 새로운 관점으로 국제관계를 다루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정체성이 변화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는 상대적 국력이 약화한 ‘자아’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창조자로서 ‘자아’ 사이의 정체성을 맞추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강조하는 정체성(identity)이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정체성의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보면 이 변화를 단순화할 수 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현재 러시아)은 ‘적대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영역에서 대립했다. 소련 스탈린은 김일성의 남침 요구에 마오쩌둥을 끌어들이는 조건부 지지를 해주었고, 결국, 중국군은 한국전쟁에 개입하였다. 한국전쟁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싸운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같은 ‘이념’을 소유한 하나의 일괴암(monolith)으로 보았다. 즉 중국에 대한 적대적인 정체성이 지배한 것이다.

1960년대 중소분쟁이 격화되자 ‘외교의 마법사’였던 키신저는 이 상황을 이용해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미국과 중국의 ‘적대적 정체성’은 ‘경쟁자적 정체성’으로 바뀐다. 1979년 미국은 중국과 수교했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선 신냉전으로 맞선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정책으로 미국에 화답했지만, 미국과 군사적 대결을 재개한 소련은 1991년 제국해체로 귀결된다.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미국은 ‘New World Order’의 자유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중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다자주의 제도가 중국을 부유한 국가로 만들고, 자유시장 경제가 중국을 민주주의로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1990년대 이 시기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가진 정체성은 ‘친구의 정체성’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적극적인 미국 덕에 중국은 WTO에 가입하게 되고,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미 무역흑자를 통해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을 이룬다.

그런데 미·중의 밀월관계는 2010년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정책’으로 깨진다. 부유하게 된 중국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환몽’이 미국을 세게 때린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2017년 국가안보보고서(NSS)에 중국을 공식적으로 ‘수정주의 국가’라고 명시했다. 25%의 관세 부과, 화웨이 제재, 환율 조작국 등으로 미국은 중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트럼프 정부는 ‘인도-태평양’ 시대를 표방하며 미국의 전통적 정체성인 ‘아시아-태평양’이란 관념을 바꿨다.

미국의 대중국 정체성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게 2020년 7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닉슨도서관 연설이다. 중국을 ‘전체주의국가’로 규정하고 닉슨 시절에 만든 대중국 포용정책을 폐기하겠다는 이 연설은 그간 미국이 중국에 대해 붙였던 모호한 수식어들을 폐기하였다. 2021년에 들어선 바이든 정부도 이 추세를 따르고 있다. 다만,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강조해 ‘이념’을 대중국 정책에 한 겹 덧댔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간결하고 명확해졌다. 적대적 정체성에 기초해 중국을 대하겠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의 철수도 중국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다. 현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러시아 지원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냉전 시기 소련의 자리를 현재 중국이 대체한 것이다.

물론 ‘정체성’보다는 미국이 가진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규정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패권 국가는 오직 권력으로만 대외정책을 수립하지 않는다. 패권 국가에 정체성과 이념은 다른 국가들에 중요한 대의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상대한다. 탈동조화(decoupling) 정책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동맹 강화로 비민주주의 중국을 압박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푸틴을 전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은 미국의 변화한 정체성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냉전 시기 힘의 경쟁에 더해 정체성 경쟁에서 승리했던 미국이 다시 중국과 힘과 정체성 경쟁을 대외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다. 조금은 달라진 구도에서 국제무대를 볼 이유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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