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노골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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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노골적이었다
  • 박영아
  • 승인 2022.03.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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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박영아</strong> <br>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21. 12. 23. 헌법재판소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고용허가제 하의 사업장변경제한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놓았습니다(헌법재판소 2021. 12. 23. 선고 2020헌마395). 헌법재판소 결정의 근거는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첫째,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헌법 제15조에 의해 보장되는 직장선택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은 헌법이 아닌 외국인력도입제도, 즉 사업장변경제한을 규정한 바로 그 법률에 의해 그 구체적 내용이 정해지고, 따라서 사업장변경제한의 위헌성은 헌법이 아닌 법률 그 자체로 봐서 합리성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외국인 노동자의 직장선택의 자유를 제한한 것은 인력의 안정적 확보라는 사용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합리적 이유가 있으므로 합헌이라는 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직장선택의 자유는 헌법이 아닌 법률에 의해 구체화된다는 논리는 이번 결정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변경제한이 문제된 10년 전 사건(2011. 9. 29. 선고 2007헌마1083)에서도 헌법재판소가 취한 입장이긴 합니다. 그런데 사용자의 사익을 위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해도 기본권 침해가 아님을 명시적으로 밝힌 이번 결정으로 그 의미가 본격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헌법적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결론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내국인의 직업선택의 자유가 문제된 사안에 대해서는 (당연히)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른 과잉금지 원칙을 심사기준으로 적용해왔는데, 직장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 중 가장 중한 형태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위 논리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이번 결정의 가장 큰 문제는, 넓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를 보완하고, 좁게는 노동자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강제노동을 방지하기 위한 노동법과 노동권의 일반원칙에 정면으로 역행한다는 데 있습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근로기준법 제20조에 따른 위약 예정의 금지, 제21조에 따른 전대채권과 임금의 상계 금지, 제22조에 따른 강제 저축 또는 저축금의 관리를 규정하는 계약 체결 금지는 모두 근로계약 해지 또는 퇴직을 막는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약정을 금지함으로써 노동자를 의사에 반하는 노동의 강제로부터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가가 오히려 나서서 사용자의 의사에 반하는 사업장변경을 금지하는 것은 강제노동의 오명을 피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업장변경제한에 대해 “외국인력도입제도의 일환”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헌법상 기본권과 노동권과 무관한 것인 양 판단을 하였습니다. 시쳇말로 “쉴드”를 쳐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외국인력도입제도(고용허가제)의 목적과 “특정 사용자의 안정적 인력확보”를 동일시하는 판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외국인력도입제도는 노동자가 국경을 넘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인력을 중개하는 제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외국인력도입제도를 통해 국내 업체에 알선된 외국인이 사용자를 위해 일하면서 노동자로서 가지는 권리는 외국인력도입제도가 아닌 노동법의 영역이고, 노동자의 기본권이 문제되는 경우, 헌법의 영역입니다. 또한 국가가 외국인력도입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인력난을 겪는 업종, 산업 또는 노동시장에의 원활한 인력공급을 위한 것이지 특정 사용자의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안정적 인력 확보”라는 사용자의 사익을 헌법상 기본권보다 우선순위에 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고용허가제 하의 사업장변경제한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는 이민법이 노동법 및 헌법과 충돌하여 발생한 문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헌법과 노동법이 이민법에 의해 흡수된다고 봄으로써 문제를 외면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시는 위에서 언급한 근본적 문제 외에 몇 가지 의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력도입제도를 통해 입국하지 않은 외국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도 외국인력도입제도에 의해서 구체화된다고 볼 수 있는가? 또는 외국인력도입제도가 법률로 정해진 경우에만 적용되는 논리인가? 그렇지 않으면 취업비자로 입국하거나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에 한해서 위와 같은 논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시행령으로 정해지는 체류자격의 종류에 따라 기본권의 내용이 달라지는 모순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이처럼 헌법질서와 이민법의 관계에 대해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번 결정이 남긴 여러 의문들이 마침내 해소되고, 이주노동자들도 언젠가는 헌법재판소의 응답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2년 3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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